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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찬 글모음/목회와신학

내 인생에 불청객이 찾아왔을 때

내 인생에 불청객이 찾아왔을 때 (목회와신학)


  ➀ 

  인생을 살다 보면 종종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경우 마치 한 밤중에 불청객이 찾아와 이런 저런 요구를 할 때면 성가시기도 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듯이 매우 당황스럽다. 떨쳐버리고 싶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세월 속에도 몇 번의 인생의 불청객이 찾아왔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한창 대학진학준비로 정신이 없을 때 어머니에게 위암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식구들은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정작 당사자인 어머니에게는 알리지도 않았다. 그것이 어머니에게 더 나을 것 같이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10개월쯤 지난 어느  주일 저녁 교회에 갔다 오니 한밤중인데도 온 집안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안 방에는 어머니께서 이부자리에 앉아 계셨다. 그리고 다른 식구들은 어머니를 빙 둘러 앉아있었다. 그때 막 방에 들어서는 나를 본 어머니는 내 손을 덥석 붙잡고 말씀하셨다. “용찬아! 내가 위암이란다!”

  나는 아무 말로 할 수 없었다. 원치 않았던 일이었다. 괴롭기도 하고 할 말도 없고, 어떻게 어머니를 위로해 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 하나님의 뜻인 걸 어떻게 해요.” 그것이 내 말의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고, 그렇게 밖에 말 할 수 없었을까 후회도 되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아버지에게는 또 다른 인생의 불청객이었다. 배우자의 사망은 인생에서 겪는 스트레스 중 최고의 지수를 나타낸다. 아버지는 그 뒤부터 매우 우울해 지셨고, 생활의 모든 판단이 흐려졌다. 염세적이 되셨고, 감상적이 되셨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친구의 꾀임에 빠져 전 재산을 다 날리게 되었다. 절망한 아버지는 결국 심한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선택하셨다.

  어머니, 아버지의 죽음은 우리 형제들에게는 전혀 원하지 않았던 불청객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는 충격이었고, 여러 가지 면에서 불편함을 가져다주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두려웠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찾아왔고, 무엇보다도 형제들 모두가 분명하게 겪은 고통스러운 경험들에 대해서 일체 함구하였다. 찾아온 불청객을 모르는 체 대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혼을 한 후에도 불청객은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나 자신이 간염으로 심하게 앓았고, 내가 나을 즈음에는 아내에게 질병이 찾아왔다. 그 외에도 참 다양한 불청객이 찾아왔었다. 집에 도둑도 들었었고, 어느 친구와 함께 큰 뜻을 품고 추진하던 일이 IMF 사태로 실패하면서 경제적인 손실을 당하게 되었던 일 등등... 인생에는 참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➁

  인생에 찾아오는 불청객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원치 않았던 일들을 만나게 되면 위기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인생의 위기는 자신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사람을 상실하거나 그 위험에 처했을 때나, 자신에게 위협적인 인물 또는 위협적인 사건에 직면하게 될 때, 혹은 지위와 역할의 상실과 변화를 경험할 때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위기를 만났을 때 다음과 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그 위기를 잘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예를 들면 지나치게 휘말려서 감정적인 상처를 잘 받는 사람, 건강이나 신체적으로 나약한 조건을 가진 사람, 고통을 피하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 술이나 흡연 등과 같은 충동적인 행동을 통해 퇴행적으로 피해가려는 사람, 비현실적으로 접근하여 해결하려는 사람, 지나치게 자신의 문제로만 생각하여 심각한 죄책감에 빠지는 사람, 문제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리고 비난하는 사람, 지나치게 의존적이거나 혹은 혼자서만 해결하려는 사람, 그리고 왜곡된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들이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황이나 문제를 인지하는 데 있어서의 너무 한쪽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지각의 균형이 필요하다. 치우친 생각, 부정적인 생각은 균형을 잃게 만든다.

  또한 혼자서만 문제를 안고 속앓이를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믿을 수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과 함께 겪고 있는 문제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더라도 함께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거움을 덜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안에 따른 구체적인 대처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모든 일의 바탕은 인내와 오래참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고 하였다.


  ➂

  인생의 불청객과 더불어 생각할 수 있는 또 하나는 고난의 문제이다. 불청객은 종종 고난의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이나 환란이 닥치면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 태도를 나타낸다. 하나는 지나치게 최소화하는 경우이다. 고통은 문제가 아니며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능동적인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지나치면 자기문제를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자기 성찰이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최대화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는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모든 인생의 목적이 된다. 고통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고, 때로는 풀 수 없는 문제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외부 탓으로만 돌리거나 아니면 내부 탓으로만 돌리려고 하는 극단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러나 인생에서 겪게 되는 고난이나 고통의 문제는 그 원인이 간단하지가 않다. 대부분이 복합적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에 한가지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생의 고난은 우리에게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고난은 종종 우리 자신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우리 자신의 연약성, 잘잘못, 심지어 죄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준다. 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성도 성찰하게 해 준다. 우리가 겪는 고난은 내 문제만이 아니라 외부의 문제가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난은 결국 이 모든 것을 넘어서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할 수 있도록 해준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고난과 고통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깨닫게 해주며, 이 세상을 넘어선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게 해 준다.


  최근 한 내담자 J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인생에 찾아오는 불청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목회자의 자녀로 태어난 J는 지금까지 남 못지않게 열심을 다하여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심한 피로를 느껴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내과진료를 하다가 우연히 내분비 검사까지 하게 되었다. 검사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작은 종양이 발견되었는데, 악성이었다. 의사의 말은 다행히 초기여서 빨리 수술을 하면 완쾌될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열심을 다하여 살아왔던 J에게는 충격이었다. 그야말로 인생의 중반에 찾아온 불청객이었다.

  J는 하나님 앞에 먼저 꿇어 엎드렸다. 눈물을 흘렀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열심을 다해 달려왔는데 왜 이런 일을 겪게 되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J는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쏟아 놓았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성찰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시간이 갈수록 J의 마음에 평안이 왔다. 그리고 완치되리라는 소망이 생겼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말씀이 떠올랐다. J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오히려 저는 이번 일로 인하여 나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총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어요,”


  ➃

  성경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위기를 겪었고, 또 그 위기를 능동적으로 극복하였던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요셉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야곱이 늦게 둔 아들이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보다 더 사랑을 받았다. 자색을 옷을 입고 아버지 품에서 날마다 귀여움을 받으면서 어려움 없이 자라던 사람이었다. 그런 태평스러움과 천진스러움이 아마도 환상과 꿈속에서 살게 했을 것이다.

  그는 어려서 이복형제들과 들에서 양을 치다가 형제들의 과실을 보면 아버지에게 고자질 하던 어린아이였다. 또한 자랑하고, 잘난 체하고 신중하지 못했던 어린아이였다.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으면서 겁 없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고 따돌림을 받다가 급기야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요셉은 깨닫는다. 꿈을 통해서 보여주셨던 예언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자신의 영혼 깊숙이 숨어 있던 영적인 비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고난과 유혹이 와도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해 주셨다.  

   보디발의 집에 집사로 일할 때에는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고 했다. 그래서 “그 주인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창 39:2,3) 고 했다. 또한 “주께서 요셉을 보시고,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5절) 고 기록하고 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에는  “그런데 내가 어찌 이런 나쁜 일을 저질러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창39:9).라고 말하면서 범죄치 않았다.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에는  “주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하셨다......그렇게 된 것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며, 주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 되게 해주셨기 때문이다.”(39:21-23)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요셉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보였다.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러 갔을 때에는 “저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기뻐하실 대답은 하나님이 해주실 것입니다.”(창41:16)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높였다.

   우여곡절 끝에 형제들을 만났을 때에는 드디어 고백한다.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45:4-9).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통해서 하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요셉은 예수님과 비교될 정도로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한다는 것과, 그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자에게는 성령께서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어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신앙의 삶의 모범이었던 것이다.

  요셉에게 있어서 위기는 언제나 더 넓은 세계와 높은 지위로 가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작용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위기를 절망의 눈으로 보면 전혀 끝이 없는 망망대해처럼 느껴지지만, 그러나 희망의 눈으로 보면 그동안 미처 우리가 알지 못하였던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활이나 습관들을 버리고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희망의 하나님이시다. 고난을 넘어서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오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생에서 고난을 당할 때에, 환난을 당할 때에 그것을 넘어선 소망과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할 때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인생의 불청객을 담담하게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노용찬목사

서울신대대학원, 연세대학교연합신학대학원박사과정수료

신촌교회협동목사, 목회상담전문가,

연세상담실전문상담사, 서울신대평생교육원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