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十字架, Cross)
십자가(十字架, cross)
십자가는 그리스도교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 고대민족 사이에서 종교적인 상징으로 쓰이고 있었다. 고대 페르시아나 이집트(애굽), 앗시리아(앗수르)에서 죄수를 고문하고 사형에 처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형틀을 말한다. 고대 이집트인은 영생의 상징으로서 바퀴가 달린 십자가를 사용하였다. 바빌로니아인이나 칼데아인은 하늘의 신인 아누(Anu)의 상징으로서 등변십자가(그리스식 십자가)를 사용하였고, 또 그리스신화에서는 아폴론신(神)이 십자형의 홀(笏)을 가지고 있고, 게르만신화에서는 토르신(神)이 십자 모양의 해머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만자(卍字:범어로 Zrivatsa:갈고리형 십자가)'가 사용되었고, 힌두교에서는 오른쪽 어깨가 올라간 갈고리형 십자가가 가네사(ganesa)라 불리는 남성적 원리를 상징하였으며, 그 변형인 왼쪽 어깨가 올라간 갈고리형 십자가인 사우바스티카(sauvastika)는 칼리(kali)라 불리는 여성적 원리를 상징하였다.
그밖에 십자가는 고대 페르시아인·페니키아인·에트루리아인·로마인, 갈리아 지방이나 브리타니아의 켈트족, 멕시코·중앙아메리카·페루 등지의 주민 사이에 널리 종교적 의의를 가지고 사용되어 왔다. 그 때문에 일부 학자는 십자가를 남근(男根)의 상징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데 주된 주장은 아니다.
이 십자가는 페르시아 사람들에 의해 로마에 전해졌고 노예나 죄수를 사형에 처할 때 흔히 사용되었다. 이때의 십자가의 모양은 두 개의 막대기를 교차시킨 X자형, T자형과 두 개의 막대기 중 긴 세로의 막대기가 짧은 가로 나무 막대 위로 튀어 나온 십자 모양의 형태가 있었다.
예수께서 달리신 십자가는 세번 째 유형 즉, 로마 시대의 십자형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목재(木材)로 만들었는데, 그 무게는 혼자서 옮기기에는 버거운 것이었다. 죄인을 먼저 못 박고 나서 그 다음에 십자가를 땅에 세우는 경우와 세워진 십자가에 죄인을 못 박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십자가의 위로 튀어나온 부분에는 죄목이나 죄수의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예수님의 경우에도 구랬다(마27:37,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로 쓴 패를 붙였다.).
십자가 형벌은 죄수의 양팔을 사람의 키보다 약간 큰 나무에 못박아 고정시켜 매달려 있게 하였다. 이렇게 되면 피가 몸의 밑으로 몰리게 되고 형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호흡이 빨라지고 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더구나 죄수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기 전 심한 채찍질도 하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으로 며칠을 보내며 죄수들은 서서히 십자가에서 죽어갔다.
로마시대에는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에게는 십자가형을 행하지 않았다. 예수 당시의 십자가형은 노예에 대한 형으로서, 치욕과 혐오(嫌惡)를 뜻했다(요 19:31,고전 1:29,갈 3:13,빌 2:8). 유대인들도 나무에 매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생각하였다(신21:22-2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대신 저주를 받으셨으며 십자가의 극한 고통과 수치를 참으셨던 것이다(마27:32-44, 눅23:26-43, 요19:17-24). 성경은 치욕의 십자가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으로서, 믿음으로써 같이 지고 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인간은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게 되었다(엡2:11-22, 롬 3:23-26). 그래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속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전1:17이하, 갈6:12, 엡2:16, 골1:20, 2:15).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오라고 명령하셨다(눅9:23).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오직 주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한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 순종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십자가가 고난과 치욕을 상징하는 것처럼 주님을 위해 어떤 고난과 수치와 역경도 이겨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없이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있을 수 없다.
고린도전서 1장 23절에 보면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라는 구절이 나온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이었다. 항상 하나님의 표적을 구했다. 그랬기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 그것도 이방인의 손에 가장 수치스럽고 극한 흉악한 죄수가 처형당하는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수치였다. 만일 메시아라면 그 십자가에서 뛰어내려 와야 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렸을 때 그 밑에 있던 자들은 주님께서 고통 중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고 부르짖을 때 엘리야를 부른다 말하면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택한 자 그리스도인면 자신도 구원하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고 빈정댔던 것이다(마27:45이하, 막15:29이하, 눅23:26이하).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음이었기에 주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또한 이방인, 특히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은 지혜를 구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그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었고, 또한 그것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구원의 십자가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연약함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