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찬 글모음/활천

가정폭력은 No! 가족치료는 Yes!

행복한세상을만드는사람들 2009. 8. 6. 12:21

가정폭력은 No! 가족치료는 Yes! (활천200년 5월)


노용찬 목사(신촌교회교육목사, 인천가정상담문화원장)


피곤한 몸을 쉬고 있던 3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9시쯤이었다. 갑자기 “사람살려!”라는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아파트 골목을 울렸다. 놀라 뛰어나가 보니 한 여인이 신을 손에 들고 떨며 서 있다가 나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외쳤다. 사람이 맞아 죽게 되었으니 빨리 3층으로 가서 도와 달라고 했다. 올라가 보니 김칫독은 깨져 복도에 국물이 흥건하고, 집안은 술 냄새가 역겨운데 술 취한 한 남편이 도망치는 아내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아내 친구가 와서 같이 술잔을 나누다가 부부싸움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남편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더욱 기세 등등하여 맞을 짓을 한 아내를 내가 때리는데 웬 상관이냐는 투였다. 자녀들은 무서운지 방에 숨어 꼼짝도 않고 있는데, 아마도 그런 일이 자주 있었던 눈치였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달려가 날뛰는 남편을 붙잡고 달래도 소용이 없자 아내 친구가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경찰이 오자 남편은 겁을 먹었는지, 겨우 진정되어 조용해졌다. 

  이 아내 구타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바로 아랫집에 사시는 아주머니는 술이 깨면 괜찮아질 터인데 무엇 때문에 경찰을 부르느냐고 핀잔하였다. 좀 젊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은 매를 피해 밖으로 도망친 아내에게 그러면 나중에 더 때리면 어떻게 하냐고 들어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라고 충고하였다. 

  이 부부폭력 사건의 경우는 사람들이 가정폭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가해자는 술기운을 핑계삼아 아내에 대한 불만을 폭력으로 풀고 있었다. 아내는 무기력하게 맞고만 있었고, 주변 사람들을 부부지간에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묵인,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는 것 아니냐는 가해자 중심의 사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 땅에 폭력이 난무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정폭력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3월 24일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열린 ‘가정폭력 대응전략 수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김재엽의 논문에 의하면 98년 1천 5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부폭력 발생률은 31.4%로 나타났다. 이는 부부 10쌍 중 약 3쌍 이상이 부부폭력을 경험했다는 것이 된다. 이것을 근거로 전국적으로 추산해 보면 전체 1천 300만쌍의 부부 중 408만 쌍이 적어도 1년에 1차례 이상 폭력을 경험하는 것이 되고, 이것은 미국의 16.1%, 홍콩의 14.1%, 재미한국인의 18.8%, 일본의 17.0%에 비해서도 크게 높은 비율이라고 하였다. 

  아동학대의 경우도 부부폭력의 비율로 유추해 보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부폭력은 자녀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체벌의 경우로 추산해 보는 것인데, 1998년 한국일보 7월 2일자에 의하면 72%의 어머니가 자녀가 잘못했을 때 체벌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영국의 28%, 프랑스 30%, 태국 23%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 가정의 가정폭력은 어느 정도일까?

1998년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기독교인 기혼여성의 23%가 남편으로부터 직간접적인 가정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폭력의 정도도 다양한데, 심한 공포감을 주는 심한 욕설과 같은 자존심을 해치는 언어폭력이 31%, 타박상을 입힌 경우가 24%, 상해는 입히지 않았지만 손찌검을 한 경우가 21%, 물건을 집어던지는 경우가 14%, 심각한 부상으로 병원치료를 해야 했던 경우도 10%나 되었다.

  기독교가정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은 일반가정에서 일어나는 잔혹성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안도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기독교인 가정의 가정폭력의 빈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응답자가 67%였고 반면에 약화되고 있다는 응답자는 28%라는 것이다. 즉 기독교인 가정의 가정폭력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가정폭력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아내구타의 경우 그 원인으로서 가부장적 가족제도, 남성위주의 경제제도, 여성을 차별하는 법제도, 한국 부부의 주종관계, 매 맞는 아내가 사회에 호소해도 개입을 꺼리는 사회문화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사회의 이중적인 성윤리가 남편의 외도와 부부갈등을 초래하고 이것이 폭력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또 알코올과 관련된 경우도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아동 구타의 경우를 보면 가해자가 주로 어머니, 아버지, 형제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자녀를 분리된 독립적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대체적으로 보면  다른 가족 구성원에 대한 구타가 일어나는 가족 내에서 자녀구타가 일어나는 경향이 높고,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자녀를 좀 더 구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어머니가 자신의 분노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폭력을 택하고 있으며, 자녀는 그 희생양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위와 같은 한국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성향을 토대로 가정폭력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성장한 가족배경의 원인을 생각할 수 있다. 가정에 폭력적인 가족원이 있을 때, 그  가정에서 성장한 자녀는 폭력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또한 힘을 통하여 가족원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가정에서 성장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가해자의 심리∙사회적 원인을 생각할 수 있다. 가정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복잡한 심리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주로 가해자 남성들의 경우 분노와 감정조절능력이 부족하거나 정서적 의존, 무력감과 열등의식, 전통적인 남성우월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더불어 약물남용이나 알코올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행위를 부정하는 특성을 나타낸다.  사회적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사회적 활동이 위축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왜곡된 사회문화적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정폭력에는 어떤 유형들이 있을까?

첫째는 육체적인 힘을 남용하는 경우이다. 여기에는 구타, 불끈 화를 내는 행위, 집안의 물건을 파괴하거나 애완동물을 해치는 것과 같은 행동이 해당되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육체적으로 해를 가하는 것이다. 아내 학대, 자녀학대, 남편학대, 노인학대 등이 속한다.

  둘째는 성적인 힘을 남용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대체적으로 모르는 사람보다 서로 아는 사람들간에 일어난다. 근친간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가해자는 주로 형제자매, 사촌, 조부모, 부모, 혹은 존경받는 다른 인물일 수도 있다. 희생자는 어린아이, 십대 청소년, 성인 남녀가 해당된다. 

  셋째는 감정적인 힘을 남용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사람의 감정이나 정신적인 상태의 침해와 관련된다. 상대의 흠잡기,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나 말, 욕, 중상모략, 비난, 위협,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 방치 등이 해당된다. 이는 한국의 가정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가정폭력 유형이기도 하다.


가정폭력은 희생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피해자들에게는 주체성의 상실, 무기력, 자아개념의 혼란, 낮은 자존감, 죄책감, 소외와 사회생활의 부적응, 가출, 자살기도, 자해, 행동장애, 우울증, 분노, 정신분열증, 스트레스장애, 성격장애, 불면증, 두통, 소화불량, 가슴답답증, 두근거림 등의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증상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현실인식의 결핍이나 현재의 고통에서 언젠가는 벗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의존심리, 두려움과 불안, 학습된 무기력과 좌절감 등이 나타낸다.


가정폭력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와 가해자 치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두 가지 접근 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치료를 위한 사회복지적 차원의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형사사법적 차원의 접근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1998년 7월 1일부로 가정폭력방지법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적 차원에서의 예방과 치료적 접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 차원의 대책은 피해자를 위한 상담소와 피난처의 설립, 그리고 가해자 치료를 위한 전문기관을 설립 운영하는 것이다. 현재 여성단체 등에서 운영하고 있는 가정폭력상담소와 피난처들이 있지만 아직 부족한 현실이다. 여기에 교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피해자의 치료와 회복을 위한 지지그룹(support group), 자조그룹(self-help group), 회복그룹(recovery group) 등을 운영할 수 있다. 가해자를 치료하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가정생활훈련, 관계훈련, 부부역할훈련, 의사소통훈련, 부모역할훈련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또한 폭력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교회는 이 일을 위해 지역사회와 사회복지기관과의 네트워크(Net-Work)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마치는 말

폭력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가정, 신앙공동체, 그리고 사회와 국가가 행복하려면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지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사랑과 용서와 관용과 따뜻한 섬김이 대신 자리잡아야 한다. 이것을 가르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어떤 폭력도 정당화하지 않으셨다. 악조차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들의 신앙공동체이다. 교회에서 가정폭력을 언급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교회는 모든 폭력을 거부하신 주님의 가르침과 사역을 계승하여 구체적으로 수행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가정폭력은 NO!라고 단호하게 외쳐야 한다. 나아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보호하고 치료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 모두가 함께 기도하며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