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영성의향기

기독교 영성의 정의와 영성훈련 프로그램 운영에 관한 소고

행복한세상을만드는사람들 2009. 10. 14. 16:19

기독교 영성의 정의와 영성훈련 프로그램 운영에 관한 소고

 


Ⅰ. 여는말


  최근 한국교회에는 영성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 저기서 영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하는 일도 많다. “영성집회”니 “영성목회”니 “영성치유”니 “영성상담”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고 있다. “영성신문”도 발간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이렇게 영성에 대해서 - 그것이 바른 의미이든 아니든 간에 -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이에 대해서 안영권은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첫째, 개인의 생활 속에 깊이 적용되지 못한 채 단지 교리적 가르침이나 예배의식의 반복으로 이어지는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를 들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교회의 양적 성장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기독교의 깊이 있는 이해와 체험 부족으로 인한 내면적 갈급함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셋째, 산업화, 현대화, 과학화, 세속화로 대변되어지는 현대인의 삭막해진 영적 상태를 신앙 생활을 통하여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들 수 있다는 것이다.1) 요약하자면 현재 한국교회 현장에서 교인들이 무엇인가 만족함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영성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영성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이루어지는 유행과 같은 “영성”이라는 말의 사용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는 긍정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목회 자체의 의미가 매우 왜곡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교회성장을 위해서, 양적 성장의 한 도구로 모든 프로그램을 활용하려고 하는 목회자들의 의식이다.

  물질문영화 되고 맘모니즘에 물들어 점점 인간소외현상이 극대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영혼 개개인이 목마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영혼의 목마름이 또다른 차원에서의 인간욕망의 채움으로 되어서는 안되며, 그것의 한 수단으로서 “영성”이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작은 글을 통하여 필자는 우선적으로 영성의 바른 개념을 정립하기 위하여 생각해 보고, 그렇게 하여 정립된 영성의 개념을 가지고 어떻게 목회 현장에서 교인들에게 영성훈련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Ⅱ. 펼치는 말


  A. 영성이란 무엇인가?


  1. 영성의 개념 정의


  영성이란 말은 기독교 안에서만 쓰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의미의 혼란도 있다.2) 성서에는 ‘영’(spirit)라는 말은 나오지만, ‘영성’(spirituality)라는 말은 나오지 않고, 대신에 ‘영적’(프뉴마티쿠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영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의 특성을 서술할 때에 사용되고 있다.3)

  영성은 신령한 성품을 의미하는 말로, 본래 ‘바람’, ‘숨’, ‘생명의 힘’, ‘원기’라는 뜻으로 생명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생령이 되게 하는 힘을 의미한다. 따라서 영성은 단순히 인간의 영혼, 정신에 국한되지 않으며, 모든 인간 생명현상의 통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4)

  영성에는 일반적으로 크게 세 가지 구분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D. G. Benner는 자연적 영성, 종교적 영성, 그리고 기독교 영성으로 구분하고 있다.5) 첫째, 자연적 영성이란 모든 종교적 영성의 기반이 되는 영성을 의미하는데, 자기 초월과 포기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형상에서 만들어진 우리 인간의 기본적인 부분이다.6)

  둘째, 종교적 영성이란 인간의 삶에 활력을 넣어주고 초감각적 실재를 향한 자세, 믿음, 그리고 실행을 묘사해 주는 단어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7) “전능자와의 관계성”을 의미한다.8) 이것은 카톨릭 영성 신학자인 Aumann이 “넓은 의미의 영성은 인간 행위를 유발하는 그 어떤 태도나 정신으로서, 구체화된 종교적 또는 윤리적 가치를 총칭한다”9)고 한 영성의 의미와 같다. 이 종교적 영성의 의미는 자기의 삶을 지배할 수 있는 삶의 영적인 중심(전능자)를 발견하고 그 중심에 의하여 우리의 모든 삶을 묶어 나가는 삶의 과정을 의미한다. 오성춘은 이러한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영성(spirituality)이란 원래 어떤 정신(spirit)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의미라고 하였다.10) 그는 이 영성에는 세 가지 기본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1) 이상적인 인간 정신의 설정, 2) 그 정신을 나의 정신으로 삼아 살아가려는 의지의 결단, 3) 그 정신을 내 속에 함양하려는 엄격한 자기훈련 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기독교 영성이다. 기독교적 영성은 위와 같은 개념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기에 여러 신학자들은 나름대로 기독교 영성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Kahl Rahner는 “인간의 영성은 인간이 창조 때부터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초자연적 생명이며, 세례로 말미암아 죽었던 속사람의 생명이 다시 소생하여 살아난 은총의 생명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은총이 강조되어 설명되고 있다11)  Urban T. Holmes는 기독교 영성을 인간관계형성의 능력이며, 그 관계의 대상은 감각현상을 초월하는 존재이며, 이 관계는 우리의 노력과 별개의 것으로 감각세계를 초월하는 확장된 의식을 우리에게 부여하며, 그 관계의 경험은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본질을 찾으며, 세계 속에서 창조적인 행위를 결단하여 초월과의 관계경험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된다고 말했다.12)

  John Macquarrie는 “영성이란 완전한 의미에서 한 인간이 되는 것(becoming a person)"이라고 정의했다.13) 여기서의 한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영과 육의 통합적 의미에서의 전인적 인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14)

  MacGinn은 “기독교적인 믿음 안에서의 살아있는 경험”으로 설명한다.15) 즉, 기독교영성이란 객관적인 계시로서의 기독교적인 믿음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도해주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김경재는 “기독교 영성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개체 생명과 공동체 생명 속에 형성해 가는 과정이며, 하나님과 이웃을 행해 항상 열려 있고 관계되어 있는 영성”으로 정의한다.16)  

  이러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기독교 영성은 어느 한 측면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Identity와 존재 안에서의 실재와 경험을 통합하여 이해해야 됨을 알 수 있다. 즉, 다음과 같은 이해이다.

  1) 기독교 영성은 본질이 아니라 관계성이다. 즉, 인격적인 초월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삶을 강조한다.

  2) 그 관계는 초월자와의 인격적인 관계의 삶을 통하여 초월의 체험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인식, 의식의 확장, 새 삶의 출발 등의 전환과 전인적인 성숙이 구체화 된다.

  3) 초월자의 관계에서 체험되고 확장된 우리의 인식은 구체적인 역사의 현장에서 행동을 통하여 구체화된다.

  이에 대해서 Bradly Hansen은 “영성이란 인간의 삶의 본질과 목적에 관한 확신에 따라서 사는 한 개인이나 한 공동체의 삶의 스타일”이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17), 이 정의에 의하면 영성의 두 차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하나는 이해의 체계요, 다른 하나는 실천적 체계이다.

  오성춘은 통합된 개념으로서의 기독교 영성은 일반적인 영성과 달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이상적인 인간으로서의 예수님, 둘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결단, 셋째, 예수님의 성품을 내 속에 형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나의 삶을 통하여 다시 구체화되도록 하는 고된 자기훈련 등이다. 여기서 일반영성과 기독교 영성의 차이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것을 도표화 해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영성

기독교 영성

1. 어떤 인간의 정신이나 어떤 사상을 본받아 살아가려는 것

2. 인간의 주체적인 노력과 결단과 훈련에 의한 인본주의적인 영성

 

 

1.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정신을 갖고 사는 것

2. 성령께서 주체자가 되어 성령이 인간 속에 열리게 하시는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에 기독교 영성은 인간의 가능성이 아닌 하나님의 가능성이다.

<표1>

  

  기독교 영성은 인격자이신 성령께서 현재 우리와 함께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안에 새겨 놓는 지속적인 성격형성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회심과 중생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은 위로부터 다시 남, 즉 회심과 중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도행전에 묘사된 초대교회는 구체적으로 성령의 역사로 회심하고 거듭난 변화된 사람들이 모인 신앙공동체로서 기독교 영성의 모델이 된다.

 

               

성령의 역사

                     ⇓

          

옛사람

 ⇒

새사람

                     ⇑  “자기” 속에 갇혀있는 인간 영의 해방

                             (죄, 자기중심성, 과거의 습관, 육체의 소욕)

 

<표 2>

  이것은 기독교 영성에서의 성령에 대한 강조를 의미한다. 그래서 기독교 영성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삼위일체론적이라는 것이다. 즉, 창조론적 영성, 기독론적 영성, 성령론적 영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18)

  첫째, 창조론적 특징은 창조자 하나님,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의지, 지혜, 창조자의 능력, 인간을 향한 창조자의 뜻, 초월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 등의 요소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이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창조 세계의 질서와 법칙에서 하나님의 본질과 뜻을 읽을 줄 아는 삶의 모습이어야 하며, 나아가 이 우주가 닫혀지 체계가 아니라 우리에게 열려진 체계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은 다가올 세계를 고대하기 때문에 현재 경험하고 있는 세계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이 세상의 참된 존재 의미와 목적, 가치, 그리고 그 한계를 바로 인식함으로써 이 세상을 바르게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한다.

  둘째, 기독론적 특징은 인간을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죄로부터의 구원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육신적인 의미,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체적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으며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역으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것은 수직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의 회복시켰다(롬8:12-17, 갈4:6). 이 성육신의 영성은 비움과 충만이라는 진리를 가르쳐 준다(빌2:5-8, 마4:1-11). 이 비움은 기독교적 충만을 경험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이며, 이러한 참된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 먼저 옛 사람의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롬6:1-11).

  셋째, 성령론적 특징은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도와주시는 능력으로서의 의미이다. 성령은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하신다. 또한 진리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하시는 분이다. 위로, 인도하실 뿐만이 아니라 경험케하시는 분이시다. 성령은 내재적인 특징을 의미하며, 하나님은 초월자 하나님으로만 동떨어져 계신 분만이 아니라 신비스럽게도 우리 삶에 오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임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2. 기독교 영성의 종류


  기독교 영성은 획일적인 모습으로 나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신학적인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그 추구하는 바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기독교 영성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다섯가지 범주로 요약하여 설명할 수 있다.


  a) 개인적인 경건에 강조점을 두는 영성

  개인 기도생활, 말씀 묵상,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확신, 거룩한 생활, 복음 전도 등과 같은 하나님 앞에서의 개인적인 경건의 삶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영성이다. 개인교의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부류에서 주로 추구하는 영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성의 특징은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반면에 사회적인 면의 강조가 약한 점이 있다. 또한 교리를 강조한다는 특징이 있다.


  b)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영성

  가장 이상적인 기독교인의 삶의 모습을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영성이다. 즉 교회와 교인은 사회의 정치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인종 문제, 여성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어나가는 것을 기독교 영성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로 보고 있다. 주로 진보적인 성향의 교인들에게서 보여지는 모습이다. 이러한 영성의 특징은 사회적인 면을 강조한 나머지 개인적인 영성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사회윤리적인 강조가 특징이다.


  c) 하나님과의 신비적인 연합에 강조점을 두는 영성

  깊은 기도와 명상, 금식 등을 통해 하나님과의 지접적인 만남의 경험을 통한 영적 연합을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로 삼는 영성이다. 이들은 일상생활을 떠나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할 수 있는 수도원적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수도원 운동, 기도원 운동 등으로 나타나는 데, 이러한 영성의 특징은 한 개인의 신비체험에 강조점을 두며 주관주의적 특색이 강하며, 그러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가 침체되거나 부패했을 때나 힘을 잃었을 때 일어나는 영성운동의 특징을 이루기도 한다. 또한 주관적 감정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d) 전인성(wholeness)을 향한 개인의 성장에 강조점을 두는 영성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전인성을 회복하는 것을 영성의 목표로 삼는 영성이다. 여기서 전인성의 회복이란 자기 실현, 자기 성취, 창조성의 발현, 생명력이 넘치는 삶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인생의 모든 경험을 전인성 회복이란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 영성의 특징은 인간의 성취를 강조하기 때문에 인본주의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e) 관계로서의 영성

  영성을 자기 자신, 하나님 그리고 공동체 이 삼자간의 관계라는 면에서 받아들이는 영성을 말한다. 이는 앞에서 열거한 네가지 영성의 종류를 종합하는 의미가 있다. 이 영성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관련지어주시는 공동체와의 연관성을 중요한 영성의 요소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3. 기독교 영성의 통합적 이해


  이렇게 다양한 개념과 이해적 차원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 영성은 단 한 마디로 설명하거나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앞에서 논의한 내용들을 통합해 볼 때에 기독교 영성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기독교 영성은 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기독교 진리에 대한 지, 정, 의의 이해와 믿음과 경험이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기독교 영성은 철저하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기독교 영성은 관계적이라는 점이다.

  넷째, 기독교 영성은 영적 실체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영적 존재인 인간사이의 관계라는 점이다. 즉 초월자이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 세계로 성육신하시어 만나주심으로 형성된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기독교 영성은 선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하나님께서 오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영성이라는 점이다.

  기독교 영성이 위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면, 그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독교 영성의 목표는 성숙한 인간이다. 즉, 기독교 영성은 기독교 신앙체계 안에서의 성숙한 인간을 향하여 변증법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내적 삶과 그 경험을 이해하고 구조화하는 일에 관심을 둔다. 그 목표는 전인적인 인간-전인적인 성숙을 목표로 한다. 이것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영(spirit)

 ⇒

영성(spirituality)

전인적 성숙(whole maturity)

 

                            ⇑                   (엡 4:13-15)

                         

중생

 (요3:5, 고후5:17)

 

<표 3>

  이상과 같은 내용들을 가지고 기독교 영성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다음과 같은 정리가 가능해진다. 첫째, 기독교영성이란 전인적인 성격을 나타낸다. 둘째, 기독교영성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관계만이 아니라, 이웃과의 수평적인 관계와의 조화가 있어야 한다. 셋째, 기독교 영성은 성령관의 관계를 통해 성장하며, 그 근원은 하나님이시다.19)

  결론적으로 위와 같은 내용들을 통해서 기독교 영성에 대해 통합적인 이해와 개념을 정리할 수 있는데, 이 영성은 바로 care-giver로서의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라는 목양적 돌봄이라는 목회활동 안에서 통합되어 나타나야 하며, 그것은 목회 현장에서의 영성훈련과정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B. 영성훈련의 실제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성훈련들은 다분히 개인주의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영성훈련이 또다른 의미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영성훈련은 어떤 목적이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성이라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이루기 위한 어떤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를 말하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을 비워 진정으로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성훈련의 기본적인 구조는 어떤 것이어야 하며, 그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1. 영성훈련의 기본구조


  기독교 영성은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영성,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영성, 관계를 강조하는 영성, 하나님과의 신비한 연합에 중점을 두는 영성, 전인성을 향한 개인적인 성장에 강조점을 두는 영성 등의 의미이다. 이런 영성의 복합적인 내용들의 구분이 영성의 기본적인 구조의 내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성훈련의 기본구조를 말할 때에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사람은 토마스 머튼이다.20) 그는 매우 신비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문제에 큰 관심을 나타내었으며, 관심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적인 문제를 묵상하는 방법을 말하고, 또 그 결과에 따라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마스 머튼의 영성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특히 믿음만을 강조하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치우친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있는 개신교인들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오성춘은 영성훈련 프로그램의 기본구조를 나와 하나님과의 단독적으로 만나고 교제하는 훈련으로서의 골방후련, 나와 이웃들간에 소그룹으로 만나서 함게 실천하는 훈련들로서의 성도의 교제훈련,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기 힘든 불특정 다수가 함께 실천하는 훈련들로서의 공동훈련, 하나님의 교회를 봉사하고 세상속에서 행동으로 봉사하는 훈련들로서의 참여와 봉사로 구분하고 있다.21) 그는 말하기를 기독교 영성이 개인적, 대인관계적, 사회적 차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구원도 이 세가지 차원을 포괄하는 전인적인 구원을 의미하듯이, 기독교 영성훈련도 개인적인 훈련(퇴수:retreat), 대인관계의 훈련(나눔:sharing), 예배와 찬양, 그리고 대 사회적인 훈련(참여의 훈련),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게에 기초한 계약(covenant)의 훈련도 동시에 필요하다”고 한다22).

  이러한 오성춘의 영성훈련의 기본구조는 리차드 포스터의 영성훈련의 기본구조를 근거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리처드 포스터는 영성훈련을 그 내용으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는 내면훈련으로 여기에는 나와 하나님과 단독으로 교제하는 훈련으로 묵상훈련, 기도훈련, 금식훈련, 그리고 공부훈련을 제안하고 있다.

  둘째는 외면훈련으로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실천하는 훈련으로 단순훈련, 고독훈련, 순종훈련, 그리고 섬김훈련을 제안하고 있다.

  셋째는 공동훈련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하여 공동으로 실천하는 훈련으로 고백훈련, 예배훈련, 인도훈련, 그리고 경축훈련 등을 제안한다. 

  리차드 포스터의 영성훈련의 구조는 개인적인 영성개발로 출발하여 공동체와 사회로 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점은 오성춘이 제안하는 구조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공통적인 면들을 강조할 때에 영성훈련의 기본구조는 이러한 뼈대로 이루어져도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즉,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만남과 관계로서의 내면의 성장을 위한 훈련과 그것의 실천으로서의 외면훈련, 그리고 직접적인 수평적인 관계로서의 공동훈련의 구조로 이루어지는 것이 균형있고 바람직한 영성훈련의 기본구조라고 생각한다.


  2. 영성훈련의 기본구조의 구체적인 내용


  1) 내면훈련의 내용과 고려해야 할 점들

  여기에는 우선적으로 묵상훈련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묵상훈련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과 자신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서는 키톨릭에서 말하는 피정, 즉 퇴수(retreat)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QT훈련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기도훈련이다. 이 기도에도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우리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며, 하나님께서 바라는 것을 함께 바라게 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을 보게 하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게 한다.”23) 카톨릭적인 방법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기도훈련의 방법에는 관상기도가 있다. 즉, 자신을 비우고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우는 기도훈련을 말한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개신교의 기도훈련은 너무 자신의 것만을 말하거나 요구하는 것이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참다운 기도는 자신을 비우고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식훈련도 생각할 것이 많이 있다. 금식은 철저하게 자기부정의 과정이다. 그런데 종종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얻기 위한 것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금식의 과정에서 배우는 것과도 어긋난다. 금식 혹은 금식기도는 철저하게 영적으로 자시을 검토하고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여 하니님께 향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하며, 금식하는 동안 시간을 절약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금식이어야 한다.

  공부훈련이라고 할 때에 여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과 수도원전통을 따라서 기독교 고전들을 읽고 묵상하는 훈련이 포함될 것이다. 이 점도 개신교인들이 매우 부족한 면이다. 성경을 공부하긴 하지만 지식적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말 그래로 생명훈련이 되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이 주체가 되어 나를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나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고 나를 변화시키는 훈련이어야 한다. 기독교 고전을 읽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신교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훈련 프로그램들은 말 그래도 지식을 쌓기 위한 공부가 되는 경우가 많아 이점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2) 외면훈련의 내용과 고려해야 할 점들

  개신교는 봉사와 섬김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이지 못하고 그것이 너무 교회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너무 화려하고 자기팽창적이다. 너무 자본주의에 근거한 상업적인 분위기가 많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에 리처드 포스터가 단순훈련을 말한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소박하고 경건하고 절약하는 정신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솔직해야 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고독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막의 의미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사막생활을 하는 민족에게서 절대자와의 만남을 강조하는 신앙운동이 많인 나타나고 있는 것도 그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주님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다.

  그런데 개신교인들은 너무 바쁘다. 일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때에 들을 수 있는 주님의 말씀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유대인들에게 “나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대답하신 말씀이다.24)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현재의 교회에 대해서 이 말씀의 의미는 매우 깊다.


  3) 공동훈련의 내용과 고려해야 할 점들

  공동훈련의 내용은 고백, 예배, 인도, 경축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도 매우 왜곡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고백의 경우 야고보서를 인용하여 진행되고 있는데, 그것이 진정으로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죄를 고백하며 변화하고 성장하는 기회가 되는 경우보다는 누군가가 통제와 지배를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인도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이며 그에 순종하는 훈련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신비성향으로 흘러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진정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구분되지 못하고 있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된다.

  또한 예배와 경축훈련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할 점들이 많이 있다. 예배의 진정한 의미는 현존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찬양하는 시간이어야 하며, 그분의 말씀이 선포됨으로서 거기에 응답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감정에 치우치거나 혹은 개인적인 교설이 주장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며 경축하는 것이 되지 못하고 순간적인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위한 열광적인 표현의 순간들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점들은 시정되어야 하며, 앞으로 진정한 영성훈련을 통해서 바로잡혀야 할 점들이라고 생각한다.


Ⅲ. 나가는 말


  간략하게 영성이란 무엇이며 교회에서 영성훈련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위해서 기본적인 구조는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하지만 독특하거나 새로운 것을 말한다기 보다는 지금까지 논의되거나 제시된 내용들을 중심으로 하면서 현재 한국개신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성훈련의 문제점들을 생각해 보는 것에 더 초점을 두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영성훈련은 유행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한국교회는 유행에 매우 민감하다. 성경공부가 유행처럼 번졌었고, 전도가 그렇고, 성령운동이 그렇고, 지금은 상담과 치유에 대한 것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하지만 신앙은 궁극적인 삶에 대한 물음이요, 절대자인 하나님을 향하는 궁극적인 관심이다. 순간적이거나 유행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일생을 통해서 계속되는 것이며, 어떤 단계에 이르면 그만두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지금 왜곡되어 있는 영성에 대한 개념이나 경건에 대한 개념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목회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먼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성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이번 학기를 통해서 영성신학에 대해서 그 뿌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은 매우 유익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동안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영성에 대한 생각들을 구체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역사를 통해 좋은 영성의 전통을 이어준 신앙의 선진들에게 감사하고, 한 학기 동안 지도해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2003. 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