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영성의향기

왜 아모스는 풍요로운 시대에 비극적 예언을 했을까?

행복한세상을만드는사람들 2010. 8. 22. 12:50

왜 아모스는 풍요로운 시대에 비극적 예언을 했을까?

  예언자 아모스는 원래 양을 치는 목자 혹은 뽕나무를 키우던 자였다(대상2:24, 대하11:5,6). 그는 북이스라엘에서 예언활동을 하였으나 북쪽 사람이 아니고 남쪽의 유다 왕국의 사람이었다.


  아모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예언을 하던 시기는 주전 760년경으로 여로보암 2세가 북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남 유다는 웃시야가 왕이었던 때이다. 이 두 왕은 다윗과 솔로몬시대에 버금가는 태평성대를 이룬 왕들이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외적들도 다 무찔렀고,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때였다.

 

  하지만 곧 닥칠 위기를 앞두고 있었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주전 721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에 잠시 동안의 풍요와 강성함은 위태로운 것이었다.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교만하였다. 남과 북이 갈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풍요로움과 강성함에 취해서 미래를 보지 못하였고, 자만하였고, 부패하였다.


  세계역사를 볼 때에 여로보암 2세 때의 사회상은 로마제국이 망할 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때, 러시아가 공산화될 때의 형편과 비슷하였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이켜 보던, 남북으로 갈라진 이후에, 아모스와 호세아가 활동하던 그때가 가장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던 때였다. 그러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아모스는 하나님의 공의를 외쳤던 것이다.

  왜 아모스는 바로 그런 때,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는 것 같은 때에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날 때에, 비극적인 예언을 선포했을까? 듣기 싫은 소리, 마치 동족을 배반하는 것과 같은 예언을 했을까? 여기서 우리는 아모스서의 예언의 목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의롭다 하면서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의 경고를 주시기 위해였다.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거역해 놓고는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서 가증스럽고 위선적인 제사와 절기 그리고 축제를 통해 타협하려는 것에 대한 심판의 경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셋째는 여호와께서는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부정, 거짓, 부도덕 등 어떤 형태의 불의든 용납될 수 없음으로 이방나라이든, 이스라엘이든 모든 악을 근절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넷째는 그러나 이 모든 심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5:4, 6)의 말씀처럼 이스라엘 민족에게 소망과 기쁨, 광명의 약속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요즘 시대상을 보면 어려 가지로 안타깝다. 과연 공의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저마다 의를 내세우고, 서로를 비판하지만, 이제는 잘못도 잘못인지 혼동스러운 사회모습이 되었다.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의심되는 시대인 것이다. 사회지도자들의 모습이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나 큰 차이가 없다.

  남북이 갈라져 있는 정치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상이 마치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의 모습과 같다. 어쩌면 풍요로움으로 흥청망청대는 모습도 비슷하다. 한 쪽으로는 어렵다, 배고프다, 살기 힘들다 하면서 쓸 것 다쓰고 놀 것 다 노는 모습과 같다. 있는 자들은 더욱 사치스럽게 변하는 모습도 비슷하다.

 

  이러할 때에 교회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무엇을 외쳐야 하는가? 아니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보여주기 위해서도, 누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위험스럽게 되었다. 우리가 살 방향을 읽고 있으며, 바라보아야 할 것을 잃었으며, 변화와 성장을 잃어버렸다. 우리가, 내가, 변화되어야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고, 바르게 보아야 하고, 바르게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