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깨운다요약(제2부증거와봉사공동체)
제2부
증거와 봉사의 공동체
제5장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
교회의 정의
신약성경에서 교회를 의미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고전1:1,3, 엡2:19).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낳으신 분이다(요1:12-13). 그가 그들을 만드시고 부르시고 보존하시고 구원하신다.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이 교회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새로운 백성의 무리들이다(골1:13).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택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나라가 된다(벧전2:9).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를 때에는 구속사적인 견지에서 보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는 예수님이 오셔서 실현하신 하나님의 통치의 유기적 제도적 세상적인 표현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보다 포괄적인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의미한다면 교회는 그 통치권 안에 속해 있는 과도기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 할 수 없다. 여기서 교회는 그 불완전성과 연약성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 할때 로마 캐톨릭과 같은 무서운 교권주의의 비극이 발생하였다.
과도기에 있는 교회는 미래에 주님이 오실 때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겸손하게 간절히 기다려야 한다. 교회는 아직 집에 도착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영원한 도성을 향해 순례의 길을 걷고 있다.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라고 정의할 때 이 교회는 교역자의 교회도 아니면 평신도의 교회도 아닌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 모두의 교회다.
교회의 존재의 이유
교회는 세 가지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첫째는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 둘째는 세상을 위해서 존재한다. 셋째는 교회 자체를 위해서 존재한다.
교회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의 인격에 근거를 두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부름을 받아 다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성도의 모임이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세상을 위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 교회의 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그 신앙의 목표에 이를 때까지 교회는 어머니의 배려를 베풀지 아니하면 안된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의 연약함 때문에 교회라는 공동체를 평생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교회의 존재 이유를 논하면서 하나님, 세상, 교회 그 자체 중 어느 하나에다 주의를 돌린다면 그것은 어떤 시대적인 요구에 따른 강조점의 차이 때문이지 취사선택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대교회는 그 자체의 준재 법칙에서 균형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전통적인 교회론이 예배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마치 세상을 위해서는 아무 책임이 없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 선교는 소구의 특정인들을 위한 전용물처럼 되어 있다. 평신도는 예배와 자기 중심적인 영적 요구를 위해서만 교회를 필요로 하는 무능한 무리로 전락하고 있다. 예배는 있으나 증거는 결여되고, 교육은 있으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소명 있는 삶으로 평신도를 부르는 책임 있는 훈련이 무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교회론을 더 발전시켜야 할 시점에 있다.
제6장 도전받는 전통적인 교회론
교회론을 생각할 때에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을 바탕으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꼭 ‘성경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성경적인 교회론은 선교의 콘텍스트에서 나온 것인데 반해 종교개혁자의 교회론은 사회 안에 주어진 상황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도성은 주후 325년에 만들어진 니케야 신조에서 교회의 네 가지 속성 가운데 하나로 확정되었던 것이다. 그 후 교회의 타락과 함께 변질되어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 갇혀버리게 되었다.
칼빈이나 루터 이후의 종교개혁자들의 교회론도 결국은 교회를 장소적인 개념에다 강하게 묶어 버리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중심적인 편협에 빠지게 되고 예배와 경건만 중시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벗어 버리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종교개혁자들은 예수님께서 그의 교회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을 깊이 주의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사도와 목사의 구분점을 분명하게 그어 준 것은 성경적으로 옳은 해석이었지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을 받은 사도적 사명을 12제자들에게만 한정해 버린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의 교회는 선교를 위한 가장 큰 잠재력인 평신도를 초대교회의 제자들처럼 복음의 증인으로, 사랑의 봉사자로 무장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게 되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교회의 사도적 본질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그것을 현대교회에 적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의 사도성이 갖는 신학적인 바른 의미를 재발견하는 일이야말로 현대교회가 안고 있는 평신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인 동시에 우리의 교회론을 한걸음 더 발전시키는 기틀이 될 것이다.
제7장 교회의 사도적 본질
가장 기본적인 본질
예수님은 그의 사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들의 터 위에 그의 몸된 교회를 세우셨다. (요20:21, 엡2:20).
그러나 말세 교회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구속사역을 다 이루시고 부활하신 다음 그의 제자들이 그 부활 사건을 믿으면서부터였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오고 있다는 기대와 예수님이 영광중에 다시 재림하실 소망을 안고 한 자리에 모이면서부터 교회는 존재하기 시작하였다.
교회는 사도들의 증거와 사역 위에 세워졌다. 사도는 교회의 시작이며 영구한 기초석이 되었다. 이런 근거에서 교회는 사도적인 것이다. 교회가 사도적이라는 것은 사도성을 그 본질하고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스 큉에 의하면 이 사도성은 교회의 본질을 결정한느 다른 모든 속성 - 통일성, 보편성, 거룩성-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사도적 계승
사도직은 독특한 것이어서 반복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도직을 어느 개인이 대신하든지 대표할 수 없다. 그러면 누가 사도들의 계승자가 되는가? “오직 한 가지의 기본적인 대답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라는 것이다. 소수의 개인이 아닌 전 교회가 사도직의 계승자이다. 또한 이 사도적 계승은 성령의 것이다. 사도성 역시 은사이며 동시에 필수 요건이다.”
교회가 사도의 계승자가 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 사도들의 교훈을 계승하는 것이다.
둘째, 교회가 사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이다.
교회가 사도의 사역을 계숭하는 일이 얼마나 절대적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지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세상에 남아 있는 그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서 가장 일치하고 있으며, 그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지 아니할 수 없다.
옥한흠은 Gottlob Schrenk의 말을 빌어서 “하나님이 뜻은” 복수가 아니라 단수이며, 그것은 “하나님이 뜻이라는 개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목적과 일치되는 뚜렷한 통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텔레마, thelema)가 단수라는 것은 그의 뜻이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교회가 구원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김을 받고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신분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신이 무엇이 되느냐 하는 것 보다 무엇을 하느냐에 그 목적을 설정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성령과 사도성과의 관계
교회의 사도적 본질과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성령은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자들을 불러서 사도들의 증거를 그대로 받아 믿고 고백하게 하신다. 그리고 구원받아야 할 다른 양들을 위해 먼저 부른 그들을 자신의 소명에 응하게 하시고 능력으로 부장시켜 주신다. 이세 제상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를 옷 입고 생활하며 이야기하는 새로운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보게 된 것이다. 이들이 바로 증거하는 공동체인 교회의 평신도들이다.
성령이 오신 이유는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준비시키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은 말세 교회를 사도적 본질을 가진 실체로 만든 것이다.
신약교회는 세상 앞에 나타나는 첫날부터 증거하는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고백하는 교회, 전파하는 교회, 찬양하는 교회가 되었던 것이다.
교회가 사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문제를 논하면서 한 가지 더 보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도들이 맡았던 목양의 사역이다.
목양 tkdurds 몸의 지체가 지키는 원리에 일치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체들은 상호 복종과 봉사라는 원리에 근거하여 몸을 돕는다(고전12:13-28). 예수 그리스도는 종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원리에 일치하는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교회에 남겨 놓으셨다(빌2:7-8, 요13:15-16).
현대교회가 사도들이 전하여 준 교리와 그들이 봉사하던 목양사역을 잘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제 우리가 한 가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교역자와 평신도가 하나를 이룬 전 교회가 세상을 위해 복음을 증거하고 사랑으로 봉사하는 사역까지 계승하지 아니하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는 중시하고 다른 하나는 경시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사도성을 바로 계승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제8장 평신도의 위치와 역할
세 가지 기본적인 개념들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위치며 그 역할은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성격을 규정짓는 세 가지 개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세 가지는 ‘하나님의 백성’ ‘성령의 전’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것은 교회가 어떤 특정한 계급이나 시분을 용납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어 불러냄을 받은 새 이스라엘이요, 택하신 족속이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이다.(벧전 2:9).
교회는 성령의 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자유함을 얻은 구원을 받은 자들이며,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으며, 이제는 육체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좇아 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신자는 누구나 성령으로 채움을 입은 성령의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성령의 전이다.
이 안에 있는 모든 신자는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된다(벧전2:4-5). 이 제사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기도와 찬양과 감사와 회개의 열매를 가진 영적 제사이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신자는 누구나 마지막 날에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누리며 그를 봉사할 제사장이 된다. 그러므로 교직제도가 교회를 대표하는 기구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봉사하는 조직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신자가 다같이 하나님을 섬기며, 산 제사를 드리며, 교회 형제들과 세상의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거룩한 제사장들의 모임이 되지 아니하면 안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 몸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 지체들은 신자들이다. 신자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자가 되고, 성만찬에서 떡을 떼고 잔을 마실 때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신비스러운 일체감을 체험하게 된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는 것은 모든 신자가 지체로서 다 중요하며 각자가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다 각자의 품위와 기능을 평등하게 소유하고 있다.
몸이 가진 유기적 특성은 모든 신자를 상호의존의 관계에다 묶어 놓고 있다. 심지어 각자의 믿음마저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끊어지면 정상적으로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신자들이 지체로서 서로 깊은 의존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상호사역의 필연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돕지 아니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교역자가 평신도를 위해 봉사하는 것만 아니라 평신도가 서로 영적 봉사를 하는 사역의 책임을 지지 아니하면 안된다. 이런 목적을 위해 성령께서는 각 지체에게 은혜의 분량대로 은사를 나누어주신다.
은사를 주신 목적이 신자가 서로 봉사하고 복종하는 유기적 관계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평신도의 위치와 역할을 바로 발견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만인제사장직
앞에서 설명한 교회의 세 가지 아이디어들은 결론적으로 모든 신자가 제사장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앞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만인제사장직이 가지는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를 성경을 통해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그것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영적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셋째, 그것은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다.
넷째, 그것은 중보하는 기능이다.
현대교회는 만인 제사장직의 근본정신을 다시 한 번 회복하여야 할 절실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평신도가 자기 본연의 위치에서 그 역할을 다하는 사도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소수의 사람이 아닌 전 교회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며 제사 드리며, 복음을 증거하며, 이웃을 봉사하는 에클레시아의 공동체가 되지 아니하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