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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조 목사님을 생각하며

행복한세상을만드는사람들 2011. 8. 4. 09:43

하용조 목사님을 생각하며

 

지난 2일 오전 인터넷 신문을 읽다가 하용조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다. 전날 급히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다음날 오전 8시30여분경에 소천하신 것이다. 그 전 주일까지도 설교를 하신 분이다. 아무리 아파도 열심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시고, 최선을 다해서 사역을 하셨다.

내가 하용조 목사님을 처음 뵌 때는 1984년으로 기억된다. 난 그 때 그 당시 연대 앞에 있던 두란노서원에서 QT훈련과정을 밟고 있었다. 둘째날인가 하목사님이 오셔서 강의를 하시면서 자신의 경험을 전하셨다. 그 때 우리 교단의 이강천 목사님도 만났었다. 나는 말씀묵상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겁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중 하나는 "나눔의 시간은 설교 시간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시간도 아닙니다. 이것이 잘못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나눔은 영어로 sharing인데 그 의미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한 깨달음을 공유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점을 명확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고 말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나는 1997년 말경부터 우연히 두란노가정상담연구원에 강사가 되었다. 그리고 1998년 가을학기에는 정식으로 전문강사로 위촉을 받았다. 그 때 강사를 위촉하는 작은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하용조 목사님을 또 뵙게 되었다. 뵐 때마다 그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열심히 전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번은 두란노서원 송년 모임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2000년 말이었던 것 같다. 하 목사님은 내가 앉은 테이블로 오시더니 열심히 위성방송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는 것이었다. 결국 그렇게 해서 CGN이 탄생했다. 하 목사님은 기도 중에 어떤 비전이 떠오르면 그것을 위해 열심을 다해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고, 참여를 요청하고, 그리고 은사가 있는 분들에게 그것을 맡겨서 이루게 하시는 분이셨다.

온누리 교회 치유사역도 마찬가지이다. 300여명의 전문가를 모셔서 필요성을 역설하고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시고 지원하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온누리교회와 두란노서원은 다양한 기독교문화사역을 지금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상담치유사역, 출판문화사역, 인터넷방송, 선교사역, 찬양사역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기독교의 새로운 사역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비판을 받는 것들도 있다. 오류도 있고, 바로 잡아야 할 것도 분명히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에 하용조 목사님의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한편으로 아주 가까이서는 교제하지 못했지만, 그분의 하시는 일에 조금이나마 참여를 할 수 있으면서 나의 은사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에 대해서 진정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그분의 환송예배가 있는 날이다. 직접 가 뵙지는 못하지만 세상이 모든 짐을 내려놓고 천국에서 이제 편안한 안식을 영원히 누리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