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말씀묵상

하나님의 약속과 소명, 그리고 우리의 인생

행복한세상을만드는사람들 2018. 1. 30. 16:53

<아침묵상>

 

미세먼지로 온 나라가 몸살입니다.

물론 평창동계올림픽 소식이나 남북의 관계나 국내 정치상황도 만만치는 않군요.

예전엔 그저 황사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가 않네요.

기술문명의 발달은 사람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기는 했지만, 그 편리함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갑자기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인간의 기술문명과 문화가 가인의 후예들인 야발(가출 치는 자의 조상), 유발(음악의 조상), 두발가인(대장장이의 조상)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기사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믿음으로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에,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는 잠시 죄의 향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장차 받을 상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11:24-26)

 

창세기 읽기를 끝내고 출애굽기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고센 땅에서 편하게 살아가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고난이 닥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고통과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의 조상과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구원해 내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그 일을 위해 택함을 받은 인물이 바로 모세입니다.

그는 애굽의 바로의 공주의 양아들이 되어 왕자처럼 살아가지만,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바로의 애굽에서 탈출해야만 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에,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는 잠시 죄의 향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장차 받을 상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11:24-26)

 

그리고 40여년의 세월이 흘러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사실에 관한 기사를 전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매우 간략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 동안의 기다림 끝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3:6-8)

 

여기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었던 언약이 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상기시키면서 모세에게 자신을 스스로 있는 나”(I AM THAT I AM.)라고 소개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성경에 최초로 나타나는 구절은 창세기 24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이며, 출애굽기에도 처음부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32여호와의 사자가라는 구절에서부터 나타납니다.

그 이전에는 하나님(엘로힘)으로 나타납니다.

여호와라는 호칭은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4개의 자음, YHWH를 말합니다.

이 단어의 정확한 발음은 알 수 없고, 일반적으로 아도나이의 발음기호를 붙여 읽어 야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존재한다”(to be)라는 동사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단순한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자신의 행동(구원사)을 통하여 스스로를 드러내신다(‘계시하신다’, ‘자신을 열어 보이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렵고 떨려서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하나님 사이에 긴 대화가 이어지는데, 그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모습과 모세를 끝까지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소명의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소명이요, 또한 사명입니다.

저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그 부르심에 따라, 그리고 주어진 사명에 따라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이지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살아가기 위해서는 떠남과 버림과 비움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그리고 삶이 방향을 재설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바로 노아가 그랬고,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그랬고, 그리고 모세가 그랬습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그러한 소명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 01. 18. 목요일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