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오늘 한기채 교수가 쓴 "기독교이야기윤리"라는 제목의 책을 읽다가 갑자기 아버지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슬픔에 그만 책을 접고 말았다. 2010년 6월의 마지막 날, 나는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전쟁 이야기가 떠올랐던 것이다.
아버지는 전쟁이 나기 전 황해도에 살고 계셨다고 했다. 그 때는 38도선으로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황해도 일부 지역이 남쪽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본적이 "황해도 옹진군"이었다.
아버지는 결혼을 해서 황해도에서 사시다가 625전쟁이 터지면서 가족을 남기고 피난하여 부산에 이르렀는데, 입대하여 얼마 있다가 유엔군이 진주하면서 카투사에 배속이 되고 미 8군에 소속되어 3년 동안을 쉴 짬 없이 전투에 참가했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에 남아 있던 가족은 끊임 없는 피난길에 고생을 하면서 큰 형님(재필 형님)은 폐렴에 걸려 그 당시 7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누님은 태어난 지 한 달만에 전쟁을 겪으면서 성장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마음에 놀램이 있나 보다. 포탄이 떨어지면 논두렁에 숨어 "아이구구"를 얼마나 외쳤는지 어머니는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며 피난살이의 고통을 새벽까지 이야기로 전해 주셨었다.
지금 어머니 아버지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 어머니는 내가 고3 때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온갖 고생을 다하시다가 조금 살만해지니까 세상을 떠나셨다. 어쩌면 팔자좋은 세상에서 살 운명이 아니었던 것처럼 그렇게 살기 좋아지니까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 역시 내가 23살이 되던 1980년 이른 봄에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꼭 5년만이었다. 아버지 역시 참 많은 고생을 하셨다. 전쟁 중에 겪었던 일들이 얼마나 험악했는지 주무시다가도 무서운 비명을 지르셨다. 내가 처음 그 비명소리를 들은 것은 고등학교에 막 입학하고서였다. 나는 그 때 그 비명의 의미를 몰랐었다. 철이 들어서야 하는 그 무서운 비명이 바로 전우들이 죽어가던 비명,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피토하며 지르던 비명이었던 것을 알았다.
나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아내와 함께 보았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개봉이 되자 마자 무엇에 끌린 듯이 나는 아내보고 그 영화를 보러가자고 했다. 그리고 숨죽이며 영화를 보면서 수없이 아버지의 잔상을 보았다. 전투장면이 나올 때마다 영화속에서는 배우들이 아니라 아버지가 총을 들고 싸우고 계셨다. 보도연맹사건으로 죄없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몽둥이에 맞아 죽고,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보면서 아버지 형제 중 4형제가 공산당에서 학살당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때 정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쪽 저쪽 편가르기로 속절 없이 죽어갔는가!
그렇게 가슴 졸이며 영화를 보다가 나는 그만 통곡하고 말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였다. 영화 속에서 전쟁이 끝나고 한 참을 흘러 이름 없는 시신들을 발굴하는 장면에서 이제 다 자란 원빈 역의 장민호가 "형, 왜 여기 있는거야! 살아서 집으로 온다고 했잖아, 형, 왜 여기 누워있는거!"하며 울부짖는 장면을 보면서였다. 나는 그 때 아버지와 그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한 없이 울었다. 다른 관객들도 울었다. 아내도 울었다. 한 참을 울었다. 서러워서 울고, 그리워서 울고, 분해서 울고, 아파서 울고, 가슴이 아려서 울었다. 극장이 아니었다면 아버지를 부르며 땅을 구르며 울고 싶었다. 그렇게 울었다.
오늘 6월의 마지막 날 이야기 윤리에 대한 책을 읽다가 나는 또다시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운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화면이 보이지 않는다. 아, 이 슬픔의 6월이 이제 간다. 이미 시간은 지나 2010년인데, 전쟁이 끝난지 60년인데, 그 역사는 나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되고, 아버지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이야기는 아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눈물의 이야기다. 슬픔의 이야기다. 비극적 이야기다. 희망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비극이다.
감독 : 강제규
주연 : 장동건(이진태), 원빈(이진석), 이은주(영신) 등
분류 : 전쟁, 드라마, 액션, 상영시간 : 145 분, 개봉일 : 2004.02.05
<줄거리>
1950년 6월.. 서울 종로거리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진태’(장동건)는 힘든 생활 속에도 약혼녀 ‘영신’(이은주)과의 결혼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생 ‘진석’(원빈)의 대학진학을 위해 언제나 활기차고 밝은 생활을 해 나간다.
6월의 어느 날,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호회가 배포되면서 평화롭기만 하던 서울은 순식간에 싸이렌 소리와 폭발음,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해진다. 이에, 남쪽으로 피난을 결정한 ‘진태’는 ‘영신’과 가족들을 데리고 수많은 피난행렬에 동참하지만, 피난열차를 타기 위해 도착한 대구역사에서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만다. 만 18세로 징집 대상이었던 ‘진석’은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군용열차로 오르게 되고 ‘진석’을 되 찾아오기 위해 열차에 뛰어오른 ‘진태’ 또한 징집이 되어 군용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평온한 일상에서 피 튀기는 전쟁터로 내 몰린 ‘진태’와 ‘진석’은 훈련받을 시간조차 없이 국군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으로 실전 투입이 되고 동생과 같은 소대에 배치된 ‘진태’는 동생의 징집해제를 위해 대대장을 만나게 된다. 대대장과의 면담을 통해 동생의 제대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 ‘진태’는 그 무엇보다 동생의 생존을 위해 총을 들며 영웅이 되기를 자처하는데.. ‘진태’의 혁혁한 전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성공한 국군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북진을 시작한다.
애국 이념도 민주 사상도 없이 오직, 동생의 생존을 위한다는 이유 하나로 전쟁영웅이 되어가고 있는 ‘진태’와 전쟁을 통해 스스로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진석’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승승장구 평양으로 향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운명의 덫이 그들 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6월이 되면서 전쟁 영화가 TV에 많이 방영된다. 그 중에 퍼시픽(Pacific)이라는 전쟁영화가 매우 사실적이다. 2차대전 이야기 중에서 태평양 전쟁을 중심으로 그려진 영화이다.
나는 전쟁 영화를 보면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전쟁의 상흔을 이기지 못해 결국 스스로 내 곁을 떠나신 아버지를 눈물로 기억한다.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6월이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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