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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가족상담소/세상엿보기

센스가 없는 사람

센스가 없는 사람

  며칠 전에 우리 교회 중고등부 학생 한명이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을 했기에 심방을 다녀온 적이 있다.

  병실이 6층에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는데, 항상 그런 것처럼 병원엔 사람이 많아서 만원이었다. 한 참을 기다리다가 그냥 계단으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문이 열리는데, 내리는 사람은 얼마 없고 타는 사람이 많아서 비좁았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조마조마한 가슴을 안고 얼른 올라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날은 덥고 스트레스는 하나 가득인데 엘리베이터가 매 층마다 서는 것이었다. 이미 승객이 꽉 차서 더 이상 탈 수는 없기에 엘리베이터는 애꿎은 문만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성질 급한 사람은 그래도 타려고 발을 디밀었다가 경고음을 듣고는 얼른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중에 어느 한순간 짜증을 확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어느 할머니의 중얼거리는 소리였다. 
  “탈 곳도 없는데 그냥 발만 들이밀면 어떻게?”
  “누가 매 층마다 단추를 눌렀나봐!”
  “탈 데 없는 걸 모르나? 왜 타려구 그래? 으이구 참!”
  매 층에 설 때마다 투덜투덜 하는 그 목소리가 귀에 인식되는 순간 너무나 신경을 거스렸다. 더운 날씨에 불쾌지수는 높아서 그렇지 않아도 모두가 지쳐 있어서 말을 아끼며 조용히 하고 있는데, 그 할머니는 주변 사람들이 들으라는 식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투덜댔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수록 모두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사람이 많은 것도 날씨가 더운 것도 아니라 이제는 그 할머니의 끊임 없는 투덜거리는 소리였다.
  살다보면 종종 모두가 빤히 알지만 그것에 대해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말해 보았자 뾰족한 수도 없고, 더 이상 나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말하지 말자고 모두가 동의하는 경우이다.
  엘리베이터의 경우도 그랬던 것이다. 불편한 것을 알지만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말 해보았자 더 피곤하고 화만 돋구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분위기를 깨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요즘 말로 센스가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갇혀서 지금의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전혀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이 순간 정의를 말 하려는가? 사실을 말해야 하고, 개인의 비판의 당위성과 권리를 말하려는가? 자기표현의 자유를 말하려는가? 아니다. 그것은 너무 비약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러한 경우가 아니다. 이 할머니의 경우는 그저 자기가 속상해서 투덜거리는 것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종종 주변 사람들을 매우 불편하게 한다.

  요즘 공감능력에 대해서 말한다. 공감능력은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과 그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같이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여기에는 이해의 차원과 감정의 차원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할 때에 이러한 공감능력을 발휘하여 피이드백해주는 것이 인간관계에 중요한 차원이다.

  그런데 고려해야 할 것은 공감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로는 전혀 말 없이도 이심전심으로 전달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전해야 할 때도 있다. 지금 모두가 처한 상황을 함께 깊이 공감하며 침묵하는 것이 그 순간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정말로 센스가 있는 사람이다.

  생각해 보자. 나는 과연 센스가 있는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