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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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2)-죄와 고난 속에 있는 인간
시작하기 전에
1. 지난 한 주간 동안의 삶을 점검해 봅시다.
① 매일 말씀 묵상을 했는가? (1, 2, 3, 4, 5, 6, 7)
② 매일 기도 시간을 가졌는가? (1, 2, 3, 4, 5, 6, 7)
③ 매일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고자 했는가? (1, 2, 3, 4, 5, 6, 7)
④ 한 주간 동안 교우들과 연락하며 교제하려고 하였는가?(1, 2, 3, 4, 5, 6, 7)
2. 한 주간 동안에 하나님께 감사한 일 한 가지씩 나누어 봅시다.
시작하는 말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며,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사람은 이 세상의 다른 동식물들과는 다르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그 차이점을 알고 사람을 ‘만물의 영장’(萬物의 靈長)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불을 사용할 줄 압니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압니다. 언어를 사용할 줄 알고, 문자와 숫자를 사용할 줄 압니다. 자연을 이용할 줄 알고,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사용할 줄 압니다. 더 놀라운 것은 놀이를 할 줄 안다는 것이며, 예술을 발전시키고, 문화와 문명을 발달시킨다는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 예를 들어 일본 원숭이 중의 일부는 고구마를 주면 바닷물에 씻어 먹기도 하고, 어떤 독수리의 일종은 부리로 돌을 떨어뜨려 새알을 깨뜨려 먹기도 하는데, 이러한 사실들은 동물들에게도 학습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어떤 동물의 지능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3살 전후의 사람 지능을 넘지 못합니다. 아무리 고도의 훈련을 시킨다 해도 말입니다.
사람은 분명히 이 세상의 다른 존재들과는 구별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구별되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지난번에 강조한 바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겉모습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靈)이시며, 거룩하시며, 사랑이시며,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는 말은 바로 사람도 그러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을 향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를 원합니다. 거룩하기를 원합니다. 서로 사랑을 할 줄 압니다. 의를 추구해 나갈 줄 압니다. 도덕과 윤리를 추구해 나갈 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줄 압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임무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처음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본래의 모습이었습니다.
타락한 인간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이 사람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마땅히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인간의 타락’이라고 말합니다. 타락墮落)이라는 말의 의미는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본래의 모습에서 타락하게 된 원인은 순전히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마땅히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난 것’, 이것이 바로 사람의 ‘죄’입니다. 여기서 다른 모든 ‘죄’와 ‘죄책’(罪責), ‘죄의 가능성’, ‘부패성’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원죄(原罪)’라고 부릅니다.
죄의 결과
사람이 타락한 결과, 죄의 결과는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벽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사람이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을 피해 숨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8, 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둘째,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생겼습니다. 인간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타락한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은 몸이 부끄러워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서 앞을 가렸다고 했습니다(창3:7). 한 몸이었던 두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사실은 이미 한 몸이 아니라 두 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두 몸이 되었다는 말은 관계가 깨어졌다는 말이지요. 뿐만 아니라 서로 핑계를 댔습니다(3:12,13). ‘죄’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맡기려 했다는 말입니다.
셋째, 사람에게 고난이 오고 죽음이 왔습니다. 사람에게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만물에게도 저주가 내려졌습니다(창3:16-19). 한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고난’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이 때부터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본래의 고향인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으며, 점점 하나님의 모습을 잃어갔습니다(창3:22-23). 형제와 형제 사이에 불화가 시작되었고, 급기야는 살인이 시작되고,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창4장).
넷째, 이러한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도 깨뜨렸습니다. 자연을 다스리고, 가꾸는 것이 아니라 착취하고 파괴해 가게 되었던 것이지요. 자연을 가꾸고 보살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탐욕을 채우기 위한 착취의 대상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는 분명한 사실은 ‘공격성’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맹수와 같은 동물들이 더 공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을 해 보면 동물들은 아무리 맹수라고 하여도 자신이 위협을 받거나 배가 고프지 않는 한 절대로 다른 동물들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함에도 불구하고 남을 해치고 공격하는 특성은 오직 사람에게만 극대화되어 나타납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라는 심리학자는 공격성을 ‘양성(養成)의 공격성’과 ‘악성(惡性)의 공격성’으로 나누어 생각했습니다. 양성의 공격성이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을 공격하는 본성을 말합니다. 아무리 무서운 사자도 배가 부를 때면 옆에 살진 사슴이 뛰어놀고 있어도 절대로 공격하지 않습니다. 배가 고파야만 공격을 하지요.
악성의 공격성이란 그러한 것과는 상관없이 남을 공격하는 본성을 말합니다. 남에게 아픔을 주고, 고통을 주고 즐기는 일,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남을 죽이는 일, 그것을 악성의 공격성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을 관찰한 결과 사람에게만 악성의 공격성이 매우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동물들에게 악성의 공격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남극의 물범이 장난삼아 물 속에 들어온 펭귄을 죽인다는 사실이 관찰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만이 가학적 행동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파괴적인 공격성, 악성의 공격성이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타락한 성품에서 비롯됩니다.
심리적으로 보거나, 사회적으로 보거나, 분명한 것은 성경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타락했으며,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처음 사람의 ‘죄’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전되었으며, ‘죄의 가능성’, ‘죄책(罪責)’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간의 심성은 부패되었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타락과정 (로렌스 크랩)
인간행동의 동기 - 죄 (사이몬 찬)
인생의 고난의 문제
옛날부터 사람들은 ‘인간의 불행’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행을 통하여 불행에서 벗어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욕생활을 하면서 모든 본능적인 것들을 악한 것으로 생각하고, 피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남는 것은 형식주의와 위선, 그리고 허무주의뿐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쾌락을 통해서 모든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려고 해 보았습니다. 술의 신을 섬기고, 광란스러운 음악과 조명 아래에서 남녀가 뒤엉켜 문란스러운 춤을 추면서 육체적 쾌락에 빠져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남는 것도 역시 속이 텅 빈 것과 같은 허무함 뿐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식과 학문적 추구를 통해서 ‘인간의 불행’에서 벗어나 보려고 하였지만, 그 역시 오히려 ‘인간의 한계’와 ‘불행’을 확인시켜 줄 뿐이었습니다. 물질문명이 발달될수록 지식과 학문은 상품화되고, 사람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 당하게 되었습니다.
학문과 지식과 교육이 발달하면 범죄가 없어지고, 윤리와 도덕적으로 발전해 갈 것 같았지만, 오히려 범죄는 늘어가고 흉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미신과 공상적인 사상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술을 통하여 불행에서 벗어나 보려고 하였습니다. 예술은 사람의 정서를 순화시켜 주고, 아름다움에 대해서 일깨워주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사람이 사는 사회를 고발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고발에 그칠 뿐 인간의 문제를 해결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개인과 사회에 구원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습니다. 예술이 발달하면 사람들의 심성이 부드러워지고 아름다워질 것 같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심성은 날이 갈수록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진시황제는 엄청난 부와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하지 못할 것이 없는 사람 같았지만, 그의 막강한 권력과 부도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방방곡곡에 사람들을 보내 보았지만 헛것이었습니다. 오래 살기 위하여 좋다는 약을 만들어 먹었지만, 요즘 밝혀진 바로는 그 약에 수은이 섞여 있어서 오히려 수명을 단축시켰다고 합니다. 부와 권력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수천 년에 걸친 사람들의 노력은 이 세상에서 ‘죄’와 ‘질병’과 ‘전쟁’과 ‘고통’과 ‘슬픔’같은 ‘인간의 불행과 고난’을 없애주지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해결되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고, 오히려 더 높이 쌓여갈 뿐이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지상천국이 올 것 같았지만 공해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공해는 이제 이 지구의 생명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전쟁무기의 발명은 한꺼번에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는 핵무기를 양산시켰습니다.
의학이 발달하면 질병이 없어질 것 같았지만, 새로운 질병이 생겨났습니다. 의학이 수많은 사람들을 질병의 고통에서 건져준 것은 사실이나, 다른 한편으로 의학이 상품화됨으로써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장기 이식수술의 발달로 불치의 병도 고쳐질 것 같았지만, 종종 신문보도를 통해서 밝혀지고 있는 것처럼 돈에 눈이 먼 타락한 자들은 생명을 담보로 하여 장기를 밀매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돈 많은 사람이 오래 살기 위해 멀쩡한 사람을 돈으로 사서 장기 이식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참으로 끔직한 일이지요.
농업기술이 발달하면 식량이 풍족해져서 굶어죽는 일이 없어질 것 같았지만, 오히려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4초에 한 명꼴로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여러 가지 약품을 쓰다보니 식품오염이 이제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사람들이 이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죄를 지어 형벌을 받아야만 할 사람이 자신의 죄, 혹은 다른 사람의 죄를 벗겨줄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자신의 죄값을 치루기도 부족한 것입니다.
또한 죄인인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코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이 되겠지요.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사람은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구원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Wretched man that I am! Who will deliver me from this body of death?) (롬7:24)
구원 받아야 할 존재인 인간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롤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6:18, 19-21참조)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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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기>
1. 인간의 타락의 과정을 서로 말해 보세요.
2. 인간이 타락한 결과는 무엇일까요?.
3. 자연인, 육에 속한 사람, 육신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아는 대로 설명해 보세요.
<다음에 성경공부주제>
보강으로 제11, 12강 ‘인간이란 무엇인가?(3) - 종교심리학적 인간이해’에 대해서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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