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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찬 글모음/국민일보

“한국교회, 자살자 유가족과 함께 울라” 라이프호프, 세번째 위로예배

“한국교회, 자살자 유가족과 함께 울라” 라이프호프, 세번째 위로예배

입력 : 2013-05-26 17:25/수정 : 2013-05-26 20:05
“한국교회, 자살자 유가족과 함께 울라” 라이프호프, 세번째 위로예배 기사의 사진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도 아내와 자식까지 둔 집안의 장남이…. 벌써 3년이 지난 일인데, 그에겐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자살한 아들을 회고하던 서모(64·춘천에서 목회) 목사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막상 당해보니까 자살자 유가족들의 심정을 알겠더라고요. 더군다나 목사한테 이런 일이 생기니까 참 많이 힘들었어요….” 

지난 23일 저녁 서울 서빙고동 서호교회(노용찬 목사). 서 목사처럼 자살로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기독교 자살예방활동 단체인 라이프호프(이사장 이문희 목사)가 지난해부터 3회째 이어오고 있는 ‘자살자 유가족을 위한 위로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오후 7시30분.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가 어우러진 가스펠송 선율이 참석자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듯했다. 15분간의 찬양곡 연주가 끝나자 예배가 시작됐다.

집례자는 실천신학대 예배학 교수인 박종환 목사. 찬양과 기도, 죄의 고백, 그리고 침묵의 시간. 설교 순서가 되자 박상칠(성수감리교회) 목사가 단상에 올랐다. 

“57년 전 정신질환을 앓으시던 제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자살자 유가족임을 고백하면서 ‘사울왕의 죽음(자살)’과 다윗의 조가(弔歌)를 주제(삼하 1:17∼27)로 메시지를 전하는 박 목사에게 참석자들의 눈과 귀가 쏠렸다.

“믿음이 연약한 이들은 외부의 압력에 쉽게 무너져 내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참된 지혜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다윗 같은 진정한 위로자입니다….”

이어지는 중보기도의 시간. “박○○ 이○○ 노○○…. 그리고 그 가족을 생각하며 기도드립니다. 우리 깊숙이 남아있는 죄책감에서 해방시켜 주시길 원합니다.” 집례자가 고인(자살자)들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유가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위로 예배의 절정은 성찬식이었다.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시간. “이것을 먹고 마심으로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의 새로운 몸을 덧입게 하사….” 유가족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충격 속에 고인을 보낸 슬픔과 죄책감, 허탈감과 남모를 고통을 이 순간 깨끗이 씻어내고 새롭게 거듭나기를 기도하고 소망했다.  

“이제 세상으로 나가십시오.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하시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십시오.” 집례자의 파송 메시지와 함께 예배는 조용히 막을 내렸다.  

1시간 남짓 지켜본 예배 현장은 ‘동변상련의 장(場)’ 같았다.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아픔을 경험한 이가 말씀을 전하고 그들 모두가 성찬을 통해 함께 위로받으며, 또 다른 유가족을 위해 위로를 다짐하는…. 라이프호프는 다음 달부터 매월 넷째 주 목요일마다 서호교회에서 자살자 유가족 위로예배를 이어가기로 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215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