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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묵상

창피한 줄도 모르는 백성아!(스바냐2장묵상)

<새벽묵상>

 

살짝 눈발이 날리는 새벽바람이 제법 쌀쌀합니다.

강원도 영서지역은 벌써 한파주의보가 내렸습니다.

어제 어느 정치인이 연설을 하면서 인동초(忍冬草)를 예로 들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모진 겨울을 견디고 핀 꽃이 던져주는 메타포를 웬만한 사람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을 따르면서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사람들아, 너희는 주님을 찾아라. 올바로 살도록 힘쓰고, 겸손하게 살도록 애써라. 주님께서 진노하시는 날에, 행여 화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스바냐2:3)

 

스바냐 2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함께 모여라. 함께 모여라. 창피한 줄도 모르는 백성아!”(2:1)

스바냐서의 역사적 배경은 유다 왕국의 역사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왕이었던 므낫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뒤를 이은 므낫세 왕이 다스리던 시대에는 친 앗수르 정책을 폈던 관계로 여러 가지 면에서 앗수르의 속국이나 다름이 없었고, 신앙이 심하게 타락하고 우상숭배가 팽배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때의 사회상과 불신앙의 모습을 책망하면서 여호와의 날’, 즉 심판의 때가 곧 올 것이라는 스바냐 선지자의 예언은 므낫세를 이은 요시야 왕 때에 개혁을 이끌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스바냐는 너무나 타락하여 자신의 창피한 모습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유다 백성을 향하여 심판의 날인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면서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 회개의 핵심은 주님을 찾아 주님의 명령을 따르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이방 족속들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죄와 불의와 불신앙은 심판하시되,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베푸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진노하시는 날에, 행여 화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불신앙의 극점에 다다르게 되면 양심은 화인을 맞고 마비되어, 자신들이 저지르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수치스러운지를 전혀 알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궤변과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자신들의 창피스러운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일수록 가장 거룩하고 좋은 것들을 앞에 내세웁니다.

세상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허나, 누구를 비난하겠습니까?

그 모습이나 제 모습이나 무엇이 다를까요?

오늘 스바냐의 말씀을 읽으면서 동시에 떠오르는 말씀은 미가서의 말씀입니다.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

주님,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기보다 먼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주님의 말씀을 겸손히 따르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7. 12. 11. 월요일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