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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가족상담소/그 사람, 그의 삶

수영 스타의 남다른 나라 사랑(고조오련을 추모하며)

<090809말씀으로세상보기>


수영 스타의 남다른 나라 사랑


  지난 8월 4일 오전 우리 나라의 수영계의 영웅이었던 조오련 씨가 사망하였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수영계에서 수많은 기록과 전설적인 이야기를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친구’라는 영화에는 “조오련이 하고 바다 거북하고 시합하면 누가 이길까?"라는 대사가 나온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스타였고, 서민들의 영웅이기도 했다. 그렇게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그의 소탈함과 어렸을 때의 가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불굴의 의지로 아시아의 물개라는 칭호를 얻은 과정에 있다. 그는 구두닦이를 한 적도 있었고, 고등학교 입학도 처음에는 거절당했던 아픔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표선수로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지만 아무도 그가 우승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막상 우승했을 때에는 시상대에 선 사진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수영선수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영웅이 되었지만, 그는 언제나 겸손하였다. 그런 겸손한 인품은 그가 남긴 말들에서도 나타난다.

  "물은 힘으로 이기려고 하면 절대로 친구로 받아주지 않는다."

  "50년을 헤엄쳐 보니 수영이란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빼는 것이더라."

  2003년 8월15일에는 한강 600리를 수영으로 종주하고 가진 인터뷰에서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2005년 8월에는 두 아들 성웅·성모 씨와 함께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바닷길을 18시간에 걸쳐 헤엄치고 나서 "우리 삼부자가 국민에게 한여름 밤의 청량제를 준 것 같아 가문의 영광"이라며 "우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자연은 이를 받아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또한 "북한에서 대동강 종단을 허용해준다면 한번 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도버 해혐을 건너고, 대한 해협을 건너고,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헤엄친 이유는 무엇일까? 잊혀질만하면 그는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넜다. 그것은 그의 남다른 나라 사랑의 표현이었다. 대한해협을 건넌 후에는 한복을 입고 일본 땅을 걸었다.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고 뛰었던 사람만이 간직할 수 있는 나라 사랑의 마음 아닐까?

  8월 15일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더욱 그의 나라 사랑의 마음에 머리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