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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찬 글모음/기독교연합신문

어린 생명도 보호받아야 할 인권이 있다.

어린 생명도 보호받아야 할 인권이 있다

 

지난 1129TV를 통해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 아버지가 이제 겨우 한 살 밖에 안 된 딸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였다. 그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알려진 것은 아버지는 평소에 우울증 증세가 있었던 데다가 최근에는 직장까지 잃어서 몹시 낙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정서로는 납득하기가 쉽지 않는 아버지의 행동이었다. 자신의 의사결정은 물론이거니와 아무것도 모르는 한 살 밖에 안 된 딸은 왜 죽어야만 했는가하는 문제이다.

예전에는 이러한 경우를 '동반자살'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게 부르지 않고, '살해 후 자살'이라고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먼저 타인(대부분은 자녀들)을 살해한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동반'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해 후 자살'이라는 행동에 대한 정확한 나라별 통계자료를 비교한 정보가 아직은 없기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유독 우리사회에서는 '살해 후 자살'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소유의식이다. 우리사회의 가족의식은 철저한 연대감으로 뭉쳐 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녀는 자신의 분신과 같아서 일체감을 갖는 것을 넘어서서 심지어는 소유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독특한 가족정서가 '살해 후 자살'의 한 원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서 자신이 없어지면 자녀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앞으로 닥칠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생각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젖먹이 아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상담소를 찾았던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어머니의 강박관념은 자신은 아기를 키울 자신이 없고 힘들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 생각은 자신 때문에 아기에게 만일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불안감으로 발전한다. 그 불안감은 차라리 아기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아기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은 혹시 자신이 아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으로 발전한다. 아기를 돌보다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이 아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어머니는 결국 병원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아버지도 실직을 하자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부양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이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느니 차라리 함께 세상을 등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한 생각이 평소에 앓고 있던 우울증을 악화시켜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결코 나무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지나쳐서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한다든지, 자녀의 생명을 부모가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루 빨리 버려야 할 생각이다.

나아가서 어린아이는 한 가정의 소중한 자녀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의 자녀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어린아이들에게도 자신의 생명을 보호받아야 할 인간적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모든 부모는 평소에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노용찬(라이프호프기독교자살예방센터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