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용찬 글모음/목회와신학

교회에 빼앗긴 남편

교회에 빼앗긴 남편(혹은 목회자 아내의 심리∙정서적 고통과 정체성의 갈등) (목회와신학)


여는말


최근 한국사회의 가정은 극심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 3월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1년 혼인․이혼 통계결과‘를 요약해 보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가 줄고 있고, 이혼건수는 1000명당 2.8건으로 늘어 하루평균 370쌍이 이혼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20년 이상 살아온 부부의 황혼 이혼이 10년 사이에 3배 가까이 늘었다는 점이다.

  이혼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본다면 그 비율이 전 연령층에서 높아지고 있지만 특히 35~39세 층에서 두드러지게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평균 이혼 연령은 남자 40.2세, 여자 36.7세로, 90년에 비해 남자는 3.4세, 여자는 4.0세 많아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혼 이유로는 부부불화(가족간 불화 포함)가 74.0%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경제문제(11.6%), 건강문제(0.7%) 등의 순으로 경제문제를 꼽는 이혼부부가 급증하는 추세로 보도되었다.

  이러한 세속사회의 결혼과 가정 문제의 변화는 기독교인 가정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모 교회상담소의 2000년 12월부터 2001년 12월까지의 상담통계를 보면 상담건수의 58%가 부부문제의 상담이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외도, 이혼, 폭력, 별거, 남편의 무능력, 성격과 성문제, 의처증과 같은 병리문제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부갈등의 내용이 비기독교인 가정의 내용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목회자 가정의 상담도 점점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체적으로 남편인 목회자보다는 아내인 사모의 상담이 월등히 많은데, 그것은 목회자 가정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부부관계라는 측면에서는 목회자 가정이나 일반가정이 그 본질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특히 목회자의 아내인 사모는 그 위치가 매우 특수한 입장에 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목회자의 아내는 교회와 가정, 그리고 남편과 교회 성도의 중간쯤에 서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목회자 아내의 독특한 위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목회자의 아내들이 상담을 해 오는 내용들을 보면 남편과의 갈등이라고 하기보다는 교회와 남편인 목회자의 일 혹은 남편과 성도간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정서적 갈등의 문제들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목회자 아내의 문제는 교회와 목회현장에 큰 영향을 준다. 목회자 부부갈등은 단순히 한 부부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문제가 될 수 있으며 나아가 목회자인 남편의 소명 성취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목회자 가정의 문제를 단순히 덮어버리는 소극적 대처가 아니라 그 원인을 살펴서 구체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펼치는 말


1. 사모의 심리∙정서적 고통의 양상들


목회자의 아내가 겪는 심리∙정서적 어려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소외감으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이다. 교회와 가정, 그리고 목회자인 남편과 목회의 일 그리고 교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성을 잃고 갈등하는 경우이다. 

  K 목사는 아내와의 갈등이 점점 증폭되자 목회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되어 상담실을 찾았다. 그의 아내는 약간의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었으며, 종종 심하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도 교인과의 사소한 갈등이 발생하게 되면 그 분노는 더욱 크게 표현되곤 하였다. K 목사는 아내의 그런 문제가 소명감과 목회자인 남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종종 나무라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였지만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K 목사는 매우 성실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소명감과 교회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다. 언제나 가정의 일보다는 목회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였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모와 어느 교인과의 사이에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의견충돌이 일어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K 목사는 평소와 같이 목회 중심적인 생각에서 사모보다는 교인 편을 들어 일을 처리하였다. 아내가 당연히 목회자인 남편의 의도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내인 사모의 생각은 달랐다. 사모는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교인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남편의 일처리를 납득할 수가 없었다.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고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소외감과 상한 자존심 때문에 너무나 괴로웠다. 그 순간부터 그 동안 섭섭했지만 마음에 억눌러왔던 남편에 대한 감정들이 폭발되기 시작하였다. 목회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아내인 자신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던 것부터 시작하여 언제나 모든 문제에서 목회자인 남편의 의사에 따라야만 하고,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일 뿐 어떤 의견이나 생각을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섭섭한 마음 등등 철저하게 사모라는 위치 때문에 자신은 소외되어야만 하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남편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폭발된 경우였다.  

  P 목사의 경우는 좀 더 어려운 경우였다. 그는 아내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내적치유그룹에 참여했다. 그 목적은 아내가 내면의 문제로 자신의 목회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되어 아내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치유그룹을 진행하면서 드러난 것은 P 목사 자신의 문제가 더 커 보였다.

  P 목사는 성취지향적인 성향이 매우 강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는데, 모두 성공할 만큼 모든 일에 전력을 다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다가 어떤 동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고 믿어 목회를 결심하였는데, 아내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중년기에 갑작스럽게 생활이 바뀌는 것에 자신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남편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오직 일 중심인 것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심하게 겪어 왔는데, 이제는 아예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목회자 아내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에 심한 두려움을 나타내었다.

  P 목사는 열심히 기도하면서 아내를 설득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결심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내가 교회개척의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건물을 세내어 교회개척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한번도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목표와 성취만을 위해 일에 빠져 있는 남편으로 인해 극심한 소외감에 괴로워했고, 결국은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두 번째로 사모들을 괴롭히는 것은 (소외감이나 정체감의 혼란과 연결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상실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남편을 빼앗긴 듯한 느낌이다.

  L 사모는 교회에서 나름대로 위치를 갖고 열심히 봉사하면서 남편의 목회를 돕고 있는 성실한 아내로 생활해 왔다. 그러다가 여신도들과의 마찰로 마음이 괴로워서 상담실을 찾은 경우였다.

  L 사모는 교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아무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가면서 점점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떠올리기도 싫은 생각들이었지만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목회자인 남편이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고 여신도들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었다. 남편은 언제나 여신도들에게는 친절하였고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무관심한 것처럼 느꼈다. 열심히 유치원을 경영하면서 목회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일의 중요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남편의 일인 목회의 많은 부분을 돕는 것처럼 남편도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일과 같은 가정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길 바랬지만 그러한 기대를 하는 사모를 어린애처럼 철모르는 요구만 한다고 나무라곤 하였다.

  L 사모는 점점 남편을 빼앗겼다는 느낌이 커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교회를 위해 열심을 다하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한 상실감은 여신도들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하였고, 급기야는 남편의 극진한 돌봄을 받고 있는 여신도들에게 질투감정까지 느끼게 되었다.


  세 번째로 사모들을 괴롭히는 것은 목회자인 남편과의 갈등이나 가정의 문제로 겪는 내면의 문제를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고립감이다. 답답할 경우 친한 친구를 만나 답답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면 비록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감정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목회자 가정의 문제가 드러나게 되면 목회나 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사모들은 남편과의 갈등의 문제나 가정에서 겪는 문제를 나눌 대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부부갈등의 문제는 일반가정이나 목회자 가정이나 결코 다르지 않다. 종종 윤리∙도덕적인 면을 어기는 부끄러운 일들도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할 경우 보통 아내들보다 목회자의 아내는 더욱 괴로움이 크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분명한 부부간의 갈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위해서 내색할 수 없고, 때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교인들 앞에서 가장해야 한다. 이것이 더욱 극심한 고립감을 느끼게 만든다. 


  네 번째로 사모들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이 이해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부감이다.

  중국 선교사로 활동하는 중년 목회자 부부가 있었다.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던 이 부부에게 어느 날 위기가 찾아왔다. 아내가 우울에 빠진 것이었다. 목회자인 남편은 아내가 힘을 내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도와줘도 모자라는 판에 무기력하게 있는 모습이 답답했다. 그래서 자꾸 재촉하게 되고 이런 저런 요구를 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자신을 좀 쉬게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는데 자꾸만 요구하는 남편이 야속했다. 어느 날 우울한 감정과 무기력감을 극복하지 못한 아내는 귀국하여 좀 쉬고 싶다고 말했는데, 남편은 그러한 아내에게 소명감을 잃었다고 나무랐다.  

  이 선교사 부부의 위기는 아내의 우울이나 무기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남편에게서 발생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늦게 신학교를 졸업하고 선교사의 소명감을 가지고 선교지로 왔지만 남편은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나서서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교인들을 모으고 이런 저런 일에 깊이 관여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사모가 너무 나선다는 교인들의 불평이었다. 그런 교인들의 불평이 있게 되자 남편은 아내를 두둔하기보다는 나서지 말라고 했다. 실제로는 남편의 역할을 사모가 대신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이 문제라는 교인들과 남편의 몰이해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부감으로 발전했고, 그것은 사모를 심한 우울과 무기력감에 빠지게 했다.


  다섯 번째로 사모들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이 남편의 목회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혹은 죄책감이다. 개척 교회의 경우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임대료만이 아니라 목회자 가정의 생활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할 때에 목회자의 아내는 자신이 경제적으로 무엇인가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에 죄책감이나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2. 사모의 심리∙정서적 고통의 원인


  1) 목회자인 남편의 측면에서


  위에 예로든 사례들에 나타난 목회자 아내의 심리∙정서적인 고통을 살펴보면서 그 원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우선적으로 목회자인 남편의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보자. 그 첫째는 목회자인 남편이 아내인 사모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목회라는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데서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할 경우 목회자의 아내는 자신은 한 남자의 아내라기보다는 목회에 필요한 도구적 존재일 뿐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한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에릭 프롬이 현대사회를 꼬집어 무감동, 무책임, 무의미의 시대라고 말하면서 인간 소외의 문제를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저 목회적 성취를 위해 필요한 도구적 존재로만 여겨질 때 목회자의 아내는 자신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과연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교회와 목회라는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 그리고 목회자의 아내와 한 남편의 아내라는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목회자로서의 남편이 공적인 위치라면 목회자의 아내인 사모도 분명히 공적인 위치가 있다. 하지만 목사와 사모가 아닌 남편과 아내라는 사적인 관계도 인정이 되어야 하고 그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한 가정의 아내요 어머니로서의 위치와 역할이 인정되어야 하며, 그와 관계된 여러 가지 욕구들이 충족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계가 인정되지 않거나 깨어질 때 목회자의 아내는 정체감의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고 나아가 과도한 역할과 그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서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세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목회자인 남편 자신의 의존성이다. 보통 부부들에게서도 많이 나타나는 부부갈등의 원인인데, 종종 남편들이 지나치게 아내에게 의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목회자인 남편이 아내에게 의존적일 경우 자신의 무능이나 부족함을 아내의 게으름이나 탓으로 투사하게 된다. 특히 성취욕구가 강한 목회자일수록 이러한 아내 탓은 더욱 커지는 경향이 있다.


  2) 목회자 아내인 사모의 측면에서


  목회자의 아내인 사모의 심리∙정서적인 고통의 원인은 남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당사자에게 더 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첫째,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피해의식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사회의 문화적인 영향으로 여성들은 성장과정에서 자신에 대해서 수치심을 배우며, 스스로 열등적인 위치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수치심을 바탕으로 한 자아정체감은 스스로에 대해서 낮은 평가를 하게 만들고, 이렇게 자리잡은 낮은 자존감은 스스로의 주장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게 하며, 결과적으로 억압된 감정이나 욕구들은 피해의식을 갖게 한다. 이러한 피해의식이 목회과정에서 위기를 만날 때 혹은 교인들과의 갈등이 발생할 때 건강하게 대처하기보다는 회피적 태도를 갖게 할 수 있고, 나아가 격한 분노로 표현될 수 있다.

  거부감이나 고립감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은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부정적 감정인 수치심은 사람들이 자신을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부부관계에 어떤 건강치 못한 문제를 안고 있다면 수치심을 가중시키게 되고 고립감은 극대화 될 수 있다.


  둘째, 목회자의 아내인 사모의 역할 혼동을 생각할 수 있다. 앞에서 남편의 지나친 성취욕구가 원인일 수 있음을 언급했지만, 그것은 아내의 경우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즉, 사모가 너무 성취지향적일 때 교회 안에서 목회자인 남편의 역할과 사모의 역할을 혼동하거나 경계를 넘어 간섭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할 때 문제발생에 대해서 비난을 받을 수 있고, 그러한 비난이 심리∙정서적인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셋째, 사회변화에 따른 여성의 의식변화와 그로 인한 목회에 대한 이해나 소명감의 이해의 차이를 생각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개인중심적이며, 자아실현과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은 가정과 여성 그리고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전통적인 가정과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어서 가족간의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목회나 소명감에 대한 이해가 목회자인 남편과 아내인 사모와 서로 다를 수 있다. 이 차이가 서로 인정되지 않거나 극복되지 못할 때 부부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그 결과로 인해 심리∙정서적으로 고통을 겪을 수 있다.


3. 치유와 해결의 실마리


  남성과 여성은 심리∙정서적인 면이나 행동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향하는 바도 매우 다르다. 남성은 성취지향적인 반면에 여성은 관계지향적인 경향이 크다. 이러한 남성과 여성의 성향은 목회현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남성인 목회자들은 목회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 성취동기가 강하다. 반면에 여성인 사모들은 관계지향적 성향이 강하다. 남성은 매우 논리와 이성지향적이지만 여성은 정서와 감성을 더 중요시한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남성의 성향 중 하나는 체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체면보다는 친밀감을 더 원한다. 예를 들면 목회자 남편과 아내가 시장에서 장을 볼 때 종종 갈등하는 경우가 있는데, 남편은 교인들이 보지 않는 골목길로 갈 것을 요구하는 반면에 아내는 큰길로 교인들이 보라는 듯이 가길 원한다. 남편은 교인들이 보면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여 그것이 목회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내는 교인들에게 남편과의 다정함을 보여주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하고, 나아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 인정과 사랑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목회자 아내의 심리∙정서적인 고통을 치유하고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는 목회자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부부관계에 대해서와 가정에 대해서, 그리고 목회현장에서의 서로의 역할에 대해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담현장에서 보면 남성들을 만나보면 여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결혼과 가정에 대해서, 심지어는 자신의 심리∙정서적인 면에 대해서조차 이해가 매우 부족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러한 문제는 목회자들에게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을 고려해면서 몇 가지 치유와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해 보려고 한다.


  첫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바른 이해, 그리고 그 역할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남성이 하나의 인격이라면 여성도 그렇다. 남편이 하나의 인격이라면 아내도 그렇다. 만일 종속된 관계라면 서로에게 종속된 관계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피차 복종하라”고 했다(엡5:21). 그것을 전제로 아내에게는 복종을, 남편에게는 사랑을 요구하였다(엡5:22~33). 이 말씀은 아내들은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체면이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또 남편들은 아내의 감성을 이해하고 그것에 상처를 주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여성과 남성의 성향을 너무나 잘 알고 반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볼 때 이 말씀은 남편들에게 초점을 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남편들을 향하여 아내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부당하게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남편의 어떤 성취를 위한 보조적 존재로 여기지 말고, 독립된 인격적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둘째, 결혼과 부부관계, 그리고 가정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볼스윅은 부부관계의 네가지 신학적 기둥을 언약, 은혜, 능력부여, 친밀감이라고 말하였다. 언약이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의미한다. 은혜란 용서하고 용서받은 것은 의미한다. 능력부여란 섬기고 섬김받는 것을 의미한다. 친밀감이란 알고 알리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적 의미에서 결혼이란 사랑을 바탕으로 한 동반자 관계의 언약이다. 이 언약을 지탱해 줄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잘못과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주는 은혜요, 서로에게 힘을 공급해주기 위한 섬김이요, 친밀감을 증진시켜줄 수 있는 서로에 대한 앎인 것이다.

  또한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변화시켜야 할 생각은 가정을 교회와 경쟁관계로 생각하는 것이다.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아직도 많은 목회자들이 가정에 대한 강조는 곧 교회의 약화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가정과 교회는 그 구성과 기능에 공통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많다. 몇가지 예를 든다면, 가정은 혈연중심의 생활공동체이다. 반면에 교회는 혈연보다는 신앙이라는 믿음의 공동체이다. 가정은 애정기능이 우선이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의 코이노니아가 우선이다. 그런점에서 교회와 가정을 경쟁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셋째, 가정생활주기와 그에 따른 심리변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은 성장발달하면서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 그 단계마다 신체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그에 따른 생리적, 심리적 변화가 다르다. 또 달성해야 할 과업도 다르다. 한 가정 안에는 이러한 가족구성원 개인의 생활주기가 중첩되어 전개된다. 그에 따라 관계도 달라지고 그 관계에 따른 심리∙정서적인 반응이나 대응이 달라진다. 건강하다는 것은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의미이다.


  넷째, 내면의 치유가 필요하다. 목회자인 남편의 인격이 미성숙할 때에 역할의 구분이 없어지게 되고 아내를 의존하게 된다. 반대로 목회자 아내의 인격이 미성숙할 때 자신의 역할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피해의식을 느끼게 된다. 인격이 미성숙하다는 것은 내면에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부정적 요소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자리잡고 있어서 지금 현재의 상황이나 인간관계에 어린 시절의 감정이나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를 말한다. 수치심, 죄책감, 고립감, 상실감으로 인한 슬픔, 두려움,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상호의존성, 일중독이나 화중독 혹은 완벽주의와 같은 충동적 행동, 지나친 통제욕구, 친밀감의 결여, 과도한 친절이나 열심, 부당한 대우에 대한 관용, 자기주장의 어려움 등도 부부관계를 해치는 특성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치유하는 핵심은 복음을 통한 절대적인 수용과 용서의 경험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절대적인 수용과 용서를 경험함으로써 수치심과 죄책감을 치유할 때 새로운 존재로서의 자아정체감을 정립하고 깨어진 관계성의 회복과 왜곡되고 뒤틀린 욕구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회 안에서 목회자의 아내인 사모의 전문적인 역할이 인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교육분야든지, 제자훈련분야든지, 가정사역분야든지, 혹은 상담치유분야든지 목회자인 남편의 보조적인 역할이 아니라 구체적이면 전문적인 역할이 인정되어야 한다.


마치는 말


  몇 년 전에 모출판사에서 “I'm more than the pastor's wife"(한글제목은 「나는 목회자와 결혼한 평신도」이다.)라는 책을 번역출판하는데 관여한 적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목회자의 아내는 독립적으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와 성도들 사이에서, 목회자와 남편의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잃고 서 있는 모습이다. 어디서도 절대적인 이해를 받고 있는 못한 고립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모들은 치유그룹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것조차도 교회에 해가 된다느니 혹은 남편인 목회자에게 덕스럽지 못하다느니 하는 이유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얽힌 감정은 풀어내지 건강하게 풀어낼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면 부정적으로 표출되게 된다. 그럴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포장되어서 그렇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종종 사모의 역할을 나서는 것으로, 문제 발생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남편인 목회자 자신이 더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다. 이제는 이러한 편견을 버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성경말씀에 돕는배필이라고 했는데, 그 의미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배필을 의미한다면 목회자의 아내인 사모는 구체적으로 교회 안에서 그리고 가정 안에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정체성과 역할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노용찬 목사

서울신학대학교신학과(B.A.)와 동대학원(M.A.), 연세대학교연합신학대학원(Th.M.)을 졸업하였으며, 현재 신촌교회교육목사겸 신촌가정상담소담당목사, 두란노기독상담실소장, 크리스천가정상담연구원장, 기윤실건강가정운동본부위원, 한국가정사역학회학술담당부회장, 서울신대사회교육원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아내 김미란과의 사이에 고3인 아들 우빈이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