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탄생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남자의 정체성 형성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출판사
1. 한 남성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여러 남성의 얼굴
전인권이 쓴 “남자의 탄생”은 자전적인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한 남자의 이야기이지만 한국 남성들의 다양한 얼굴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을 택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선 나와 세대가 같다.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같은 시대적 공감을 갖고 있다. 책 여기저기에는 마치 함께 경험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내용들이 산재해 있다. 친구처럼 느끼기도 했다. 아마도 이 책이 잘 팔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읽는 이들로 하여금 아하! 그렇지! 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살펴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게 교과서적인 책이 아니지만 가족관계를 연구한 정치학자이면서 동시에 평론가이기도 한 그의 지금까지 공부한 이력과 꼼꼼함과 구체성이 잘 담겨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부부 내담자가 생각이 났다. 남편은 나와 동갑이었는데, 특전사 출신이며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그 아내의 불평은 남편이 전혀 벽창호 같아서 함께 살기가 이제는 지긋지긋하다는 것이다. 큰 딸과 작은 딸 아내와 남편 이렇게 네 명으로 구성된 가족이었는데, 이제는 딸들조차 아버지를 싫어하고 있다고 했다. 남편은 참 이상한 행동을 자주 하였다. 택시 기사를 하면서 가족을 부양해 왔는데, 나중에 발견한 것은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는 남편이었다. 특전사 출신이 신경안정제를 먹다니! 아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허약한 남편이었던가? 연애할 때는 정말로 강해보였고, 또 무작정 대쉬해 와서 7년간의 구애 끝에 결국 항복하고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결혼 후의 남편의 모습은 정말로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남편의 모습 중 또 하나는 휴일만 되면 온 가족을 동원하여 부모를 찾아보아야만 하는 경우였다(실제로는 어머니를 찾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아무리 가족 나들이를 원해도 용납되지 않았다. 겉으로 내세운 것은 효도인데, 속마음은 부모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었다. 특히 어머니와 분리되어 있지 못했다. 다 커서 독립한 한 가족의 가장이면서도 여전히 어머니의 인정과 사랑을 강력하게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반기는 것도 아니었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만나면 종종 다투면서 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다음 휴일이 되면 여전히 부모를 찾아보아야만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경우에는 그렁저렁 가능했지만,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이제는 힘으로 강제하였다. 아주 재미있는 사건은 아이들이 집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전화로 들어오실 때 귤을 먹고 싶으니 사오라고 부탁하면 아버지는 사오라는 귤이 아니라 사과나 다른 과일을 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이 항의하면 대답이 걸작이었다. “한 가지 과일만 지속적으로 먹으면 영양실조에 걸리기 쉬우니까 다른 과일을 사왔다.”는 것이었다. 노란필통을 사고 싶다고 아이가 말하면 기어이 자신이 생각한 파란 필통을 사주기도 했다. 다시 말해 아내나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주고 싶은 것을 해주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상담을 진행하는 과정 중에 어느 날 느닷없이 상담자인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것이었다. 가족과 함께 한 그 자리에서 내가 목사인지 뻔히 알면서도 술을 권하는 것이었다. 식사자리에서 남편이 확인코자 한 것은 자신과 나의 경력과 연령이었다. 즉 서열을 가리고자 했던 것이다. 다행히 동갑이어서 망정이지.... 이런 여러 가지 경험들을 통해 드러난 남편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 남편이 세상을 경험하는 방법은 승리인가 아니면 패배인가였다. 그것은 군대생활을 통해 더욱 강화된 것이었다. 심지어 자녀나 아내의 의견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도 그에게는 패배로 느껴지고 있었다. 철저하게 흑백논리였다. 그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은 경직성을 만들어주고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들었다. 남편의 사교모임은 군대생활을 통해 결성된 것으로 언제나 부부모임으로 모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한 자리에서는 아내를 몹시도 위하는 것처럼 태도를 취했다. 대체적으로 예쁜 아내를 내세우려고 했다(실제로 미인이었다). 그러면서 언제나 자신을 돋보이려고 했고, 토론 중에는 무조건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화를 내기가 일쑤였다. 당연히 동료들이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문제를 보려고 하지 않고 상대들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였다. 이것도 아내와 항상 다투는 문제였다. 즉, 나는 언제나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확고한 사고였다. 거기에 미모의 아내를 앞세우는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흑백논리, 독불장군식의 가족관계와 사회관계, 융통성과 유연성의 부족, 다양성의 부족, 속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는 대화단절, 어머니에 대한 의존과 인정욕구,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다른 형제들과의 경쟁심과 불화,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버지 역할의 부재,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신경안정제의 복용, 허세와 허풍 그리고 뒤에 숨어 있는 연약성, 모임에서의 권력추구 등등. 이것이 그 남편의 모습이었다.
한 “남자의 탄생” 과정을 추억처럼 그려내고 있는 이 책은 이 부부 상담 사례에서 드러난 남편의 모습이 왜 그런가 하는 원인을 깨닫게 도와주는 단초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구태여 심리학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2. “남자의 탄생”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
나의 경우는 어떤가? 저자의 말대로 오래전부터 괴롭혀 온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모습일까?”,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특히 아내에게 혹은 아들에게 비춰진 나의 모습이 매우 궁금하기도 하면서 어쩌면 그 대답을 듣기가 매우 두려운 것이기도 했다. 이점은 지금도 그렇다.
저자와는 다르게 우리 집은 두개의 공간은 아니었다. 하나의 공간이었다. 지금은 섬이었던 고향은 시화호 둑으로 변해 이제 그 집은 사라졌지만 처음에는 일본인들이 사용하다가 미군들이 사용하던 큰 사택이었는데, 방이 여러 개였지만 온 식구들이 (6명의 가족) 한 방에서 생활했다. 그런 관계로 나에게는 저자와 같은 유년시절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기억해 낸 중요한 발견은 형제들과의 관계 기억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사건을 기억하면서도 형제들과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면 모두가 “나 중심적인 기억과 회상”이지 그 자리에 분명히 함께 했을 법한 형제들이 기억되지 않았다. 때로는 나 혼자만이 경험했던 사건처럼 묘사되기도 해서 동생이나 형이 강력히 반발하며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결국 기억에는 없지만 이 책의 저자처럼 나 역시 어머니의 세 얼굴을 경험했던 것이다. 분명히 나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나를 형제들 중에 가장 좋아했다는 기억을 갖고 있었다. 자기애성의 시작이었다.
또 가옥 구조가 아버지의 공간과 어머니의 공간이 따로 존재하는 이분법적 양육공간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나에게는 같은 경험이었다. 아버지는 분명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으로 느껴졌다. 아버지 앞에 서면 언제나 무엇인가 껄끄럽고 두려운, 그러면서도 가까이 하고픈 그런 존재였다. 아버지를 통해 언제나 들은 이야기는 “공부”였다.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형제들 중 셋째로 태어난 나는 아버지의 그러한 반복적인 이야기를 통해 언제나 무엇인가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마음속의 음성은 언제나 나를 괴롭히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만족할 수 없었고,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고, 오히려 항상 뭔가 부족한 나, 열등적인 나, 분명히 할 것이 있는데 하지 않고 개기는 그래서 옳지 않은 나로 느껴졌다.
나의 아버지 살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는 아마도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5학년 때부터 인천으로 전학을 해 누님, 형님과 자취하면서 공부하던 나는 중학교 때에야 온 가족이 다시 합쳐졌는데, 고등학교 입시에 시달리면서 지냈던 중학교 때의 기억은 그렇게 밝지가 않다. 사춘기로 들어서는 그 때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기였지만 뚜렷한 영향은 없다. 그저 순종적이고 모범적인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속에는 갈등이 많았다. 그 고민은 철저하게 나의 능력에 대한 것이었다. 미래에 대한 꿈이 아니었다. 사실 무엇이 될까 하는 꿈을 구체적으로 가져본 적인 없는 성장과정이었다. 그 당시 현재의 학업에 대한 결과와 나의 능력이었다. 그러한 내면의 갈등은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향해서 터졌는데, 언제나 논쟁을 했고, 대들었고, 심지어 대학을 갈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대학 거부 선언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와의 그러한 대결과정은 점점 독단적이며 고집스럽게 토론에서 이겨야만 하는 편협성을 만들어주었다. 편협성이라 함은 아버지와의 대화 과정을 통해서 나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동의하고 결과적으로 발전적인 제 3의 대안을 찾는 자세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버지 역시 전형적인 전인권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방에 갇혀서 절대군주처럼 고고하게 가족의 대소사의 모든 짐을 홀로 지고 가는, 그래서 결국 자신의 모든 결정은 항상 옳고 의로운 그런 모습이었다. 이러한 아버지에게 종종 반기를 드는 가족은 어머니와 누님이었다. 그럴 때면 집안에는 천둥번개와 함께 폭풍이 몰아쳤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러한 천재지변이 있고 나면 한동안 집안은 예전보다 더 평화로웠다. 반기를 들었던 여성들의 철저한 패배를 통해 획득된 어쩌면 전리품 같은 평화였다.
강력해 보이는 아버지와 종종 논쟁했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이기기 힘든 존재였다. 아버지는 가까이 하고 싶기도 하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고 억압하는 존재였다. 그런 양가감정은 “독립을 선언한다!”고 외치는 잠꼬대로 극대화 되어 나타났다. 잠꼬대로 크게 외치며 꿈속에서는 강력한 항의를 하지만 그러한 억압에 대항하여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우회적인 언어나 행동으로 순화되어 나타날 뿐이었다. 독립선언의 외침은 반골적인 성향으로 발전되었지만, 그것은 약간은 비겁한 모습으로 매사에 비판적이며 도전적인 것 같지만 막상 행동해야 할 때에는 물러서는 양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모습은 70년대 후반과 80년대의 시대상활을 경험하면서도 길거리로 나서지 못하고 방구석에 칩거하면서 수염과 머리를 깍지 않은 채 소설 쓰기와 시 쓰기로 숨어버리는 시절로 나타났다. 저자가 날카롭게 분석한 한국 남성들의 아버지 살해의 논리 구조 속에 드러난 비겁함, 우회적이면서 그의 표현에 의하면 “비겁하고 유약한” 모습과 같다. 그래서 홍길동이 겨우 건설하였다는 것이 율도라는 한 섬으로 숨어들어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처럼 세상과 단절하여 더욱 나라는 자아 속에 숨어버리는 내 모습이었다. 이것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 다른 남성들의 모습이기도 한 것 같다.
아버지와의 논쟁은 다분히 권력지향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 남성들이 그토록 정치적 대화를 많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토론 속에 있는 동안은 누구나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고, 야당이 되고, 여당이 된다. 핏대를 올리며 이야기 하지만 회고해 보면 억지만 있지 설득이나 타협이나 대안은 없고 주장만 있는 그런 권력투쟁과 같은 술자리의 대화를 발견한다. 이러한 모습은 TV방송국에서 진행하는 토론 프로그램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분명한 독재자이며 그에 의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하고 억압당하고 인권을 유린당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한국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이 점은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국감 현장에서 보여진 장세동의 모습을 보면서 극찬하는 이유는 한국 남성들의 마음 한 구석에 그들과 같은 힘에 대한 동경과 권력에의 의지가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가정과 성장과정에서 경험하는 아버지의 절대권력과 그와 함께 겪어가는 삶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한국 남성들의 성(性)과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눔이나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남성성, 즉 권력과 힘과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허풍을 떨고, 과장하고 과시한다. 진정한 사랑과 부드러움과 아름다움과 영원성을 상실한다.
다른 한편으로 어머니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은 성장과정에서 결핍된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것과 어우러져 인정욕구와 멜랑콜리로 나타난다. 이런 멜랑콜리는 일탈된 로망스로 나타난다. 전인권은 그것을 “진급하는 삶”으로 표현했는데, 채워도 채워도, 올라가도 올라가도 채워지지 않고 만족되지 않는 한국남성들의 마음속의 공허함이 끊임 없는 모성추구의 모험속에 내던져지고, 그것은 때로 왜곡된 양태로 남아 골목마다 유원지 뒷켠마다 엄청난 수의 러브 호텔을 세우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인천의 어느 구청 주변은 새벽이면 지나가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술집과 모텔로 둘러싸여 있다. 어느 나라의 관공서 주변이 그런 모습일 수 있을까? 다른 나라의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性이라는 것이 이토록 공공연하게 돈으로 매매되는 사회가 있을까? 최근 결찰청이 성매매를 근절하려고 일대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이것은 여성들의 문제이기 보다는 본질적으로 남성들의 문제이다. 남성들이 이중적이 것이 아니라 (전인권은 이것을 “성녀 아니면 창녀”로 함축하고 있다.) 건강한 성과 사랑의 의미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피해여성, 피해청소년, 원조교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 두 가지 상반된 신화 - 아버지 살해와 자식 살해 - 그리고......?
서양의 신화는 아버지를 살해한다. 그러나 동양의 신화는 병든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자기 자식을 살해한다. 이런 예화도 있다. 어느 가정에서 손주와 함께 자던 할아버지가 그만 손주를 깔아죽였다. 아침에 이것을 발견한 아들은 아버지가 알세라 살그머니 죽은 아이를 안고 나와 볼기를 쳤다. 할아버지를 놀라게 해서 불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볼기를 맞은 갓난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줄 알았는데, 매를 맞으면서 숨이 다시 트인 것이었다. 즉,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사고로 죽은 아들도 살렸다는 것이다. 효자동이라는 마을 이름은 그래서 생겼단다.
분명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은 한국 남성들의 정체성의 형성과정을 독특한 한국사회문화 속에 있는 가정과 성장과정 속에서 찾고 있다. 그러면서 비판적인 것 같으면서도 요소요소에 프로이드를 근간으로 한 서구적 해석방법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독특성이 있음을 갈파하고 있다. 그러기에 한국의 가부장제가 가져다 준 영향과 그것이 심지어 정치사회적인 면면에 끼치는 해악을 말하면서도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어떤 애증과 같은 느낌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의 말을 인용해 보자. “나 자신이 얼마나 ‘동굴 속 황제’인가를 들여다보아야 하고, 자신의 마음에 형성되어 있는 어린 시절의 우상, 아버지를 발견하고 그 아버지를 살해해야 한다.....당신의 마음에 깊이 각인된 ‘이상적인’ 사람의 이미지를 살해하라는 이야기다. 그것이 당신을 동굴 속 황제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시 “직선은 원을 살해하였는가?”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20대 초반 한창 내면에 침잠해 있을 때 나는 이 구절을 서구적인 사고가 동양적인 사고를 - 서구적 문화가 동양적 문화를 살해하였다고 해석했다. 정신분석학적 맥락에서 보면 아버지와의 싸움은 이상화된 자아(Ideal Ego)를 형성케 해준다. 그 자아는 이상화된 아버지 혹은 부모를 살해함으로써 진정으로 완성된다.
가족 안에서의 아버지 살해와 자기 정체성의 형성과정은 가족 밖의 사회와 문화 속에서도 진행되고 또 진행되어야 하는 것 같다. 그것은 “나”라는 좁은 세계에서 더 넓은 세계로의 인식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Ego Inflation된 현대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나” 혹은 “자기”들도 역시 살해되어야 할 대상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가 꿈꾸는 세상, 동굴속의 황제라는 이중구조를 걷어내고 한 공간에서 모두가 차별 없이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평등한 유토피아적 세계는 작은 세계와 우주를 넘나드는 인식의 확장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살해의 명제는 동시에 진정한 아버지의 탄생 혹은 부활 혹은 소생으로 회귀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풀어야 할 파라독스..... (200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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