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
어제 주일아침 예배를 인도하다가 결국은 참지 못하고 울고 말았습니다.
사도신경을 함께 암송하며 신앙고백을 하는 순간에 그만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지혜나 능력도 없습니다.
힘을 얻고 기도하기 위해 모인 성도님들 앞에서 저의 믿음이 부족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자신 하나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돕겠다고 나서겠습니까?
사방에서는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마음은 울적합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야겠지요.
구례지역 목회자님들께서는 벌써 봉사활동을 개시하셨더군요.
대자연의 힘 앞에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주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내가 너를 악인들의 손에서도 건져내고, 잔악한 사람들의 손에서도 구하여 내겠다.”(예레미야15:21)
<성경통독말씀 살펴보기>
◎ 예레미야 13장에서는 썩은 베 띠와 포도주 가죽부대의 비유를 통해서 유다에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썩은 베띠의 비유 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 악한 백성은 나의 말 듣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살아가고, 다른 신들을 쫓아가서 그것들을 섬기며 경배하므로, 이제 이 백성은 전혀 쓸모가 없는 이 띠와 같이 되고 말 것이다.”(렘13:10).
포도주 가죽부대 비유를 통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그들이 서로 부딪쳐서 깨지게 하고,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도 서로 부딪쳐서 깨지게 하겠다. 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으며, 동정도 하지 않으며, 사정없이 멸망시킬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렘13:14).
이 모든 것은 결국 유다 백성의 불순종과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불순종과 교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않으면, 너희의 교만 때문에 내 심령은 숨어서 울고, 끝없이 눈물을 흘릴 것이다. 주님의 양 떼가 포로로 끌려갈 것이므로, 내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를 것이다.”(렘13:17).
◎ 예레미야 14장 1절부터 15장 9절까지에는 가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뭄으로 유다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하자 예레미야는 중보의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는 이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나에게 기도하지 말아라. 그들이 금식을 하여도, 나는 그들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겠다. 또 그들이 번제물과 곡식제물을 바쳐도, 나는 그것을 받지 않겠다. 나는 오히려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전멸시켜 버리겠다.”(렘14:12)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에게 심판을 선언하시는 이유는 유다 백성의 죄와 거짓 예언자들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 1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네 가지로 유다 백성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렇게 네 가지로 그들을 벌할 것이다. 그들을 칼에 맞아 죽게 하며, 개가 그들을 뜯어먹게 하며, 공중의 새가 그들의 시체를 쪼아먹게 하며, 들짐승이 그들을 먹어 치우게 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이렇게 하여 그들로 세상 만국을 놀라게 할 것이니, 이는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유다 왕으로서 예루살렘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렘15:3,4)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예레미야는 슬픔과 탄식으로 하나님께 간곡하게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가득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예루살렘아, 누가 너를 불쌍히 여기겠느냐? 누가 너를 생각하여 위로의 눈물을 흘리며, 누가 네 안부라도 물으려고 들러 보겠느냐? 네가 바로 나를 버린 자다. 나 주의 말이다. 너는 늘 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나는 이제 너를 불쌍히 여기기에도 지쳤다. 너를 멸망시키려고 내가 손을 들었다.”(렘15:5,6)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예레미야는 슬픔과 탄식으로 유다 백성들을 대언하며 하나님께서 간절히 기도하지만, 예언자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거부하십니다.
그만큼 예루살렘과 유다의 죄악이 컸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너무나 괴롭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 겪는 고난과 죽음의 위협에 호소합니다.
“어찌하여 저의 고통은 그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저의 상처는 낫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흐르다가도 마르고 마르다가도 흐르는 여름철의 시냇물처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렘15:18)
유다 백성의 불신앙과 교만, 그리고 우상숭배와 윤리도덕적 타락에 대하여 심판을 선언하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예레미야의 간절한 기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주가 말한다. 네가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맞아들여 나를 섬기게 하겠다. 또 네가 천박한 것을 말하지 않고, 귀한 말을 선포하면, 너는 다시 나의 대변자가 될 것이다. 너에게로 돌아와야 할 사람들은 그들이다.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내가 너를 튼튼한 놋쇠 성벽으로 만들어서 이 백성과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에게 맞서서 덤벼들겠지만, 너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어서, 너를 도와주고, 너를 구원하여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를 악인들의 손에서도 건져내고, 잔악한 사람들의 손에서도 구하여 내겠다.”(렘15:19-21)
<생각해보기>
● 종종 교회에서는 왜 죄 이야기를 많이 하냐? 하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죄책감 때문에 괴로운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맘이 불편하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한 분들은 죄의 개념을 단순히 행위적인 것으로 좁혀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우리가 죄에 대해서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행위적인 차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인간의 실존 자체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죄의 문제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 전체를 성찰한다는 의미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히브리서 4:12).
● 오늘 예레미야 13장-15장을 읽으면서 여실히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고집과 교만과 순리를 거스름과 거짓된 마음입니다.
저마다 옳다고 수많은 말들을 뱉어내지만, 심지어 최첨단 기기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감정과 생각들을 뱉어내고 있고, 또다른 이들은 아무런 비판 없이 그것들을 퍼 나르며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말은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마땅한지를 알아야 합니다.”(골로새서 4:6).
오늘도 수해를 입고 고통 속에 있는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기도합니다.
온 힘을 다해 코로나19를 예방하고 파괴된 도로와 집과 농지를 복구하느라고 애쓰는 수재민들과 공무원들과 봉사자들과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어려울수록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가 되게 하시옵소서.
이 재난이 속히 지나가게 하시고, 하루속히 모든 것이 일상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나라의 안전과 평안을 구하며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 08. 10. 월요일 아침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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