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
요즘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다 보니 머릿속도 헝클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성경읽기 본문을 잘못 알고 엉뚱한 곳을 읽고 글을 올렸네요.
오늘 다시 정정하였는데, 혹시 제 글을 읽는 분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가끔 날짜를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 일을 하다보면 일주일을 앞서서 가다보니 그런 일이 생기곤 합니다.
마음을 좀 추슬러야 할 모양입니다.
오늘은 가끔씩 해가 비치면서 파란 하늘이 보이기도 하네요.
이제부터 당분간은 폭염과 싸워야 하겠지만, 수해 복구를 위해 애쓰는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예레미야22:29)
<성경통독말씀 살펴보기>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였지만,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에게 돌아오는 것은 핍박이었습니다.
예레미야 19장은 그러한 이스라엘의 극악한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에게 항아리 하나를 사서 인신공양을 하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한 후에 그것을 거기서 깨뜨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주가 말한다. 토기 그릇은 한번 깨지면 다시 원상태로 쓸 수 없다. 나도 이 백성과 이 도성을 토기 그릇처럼 깨뜨려 버리겠다. 그러면 더 이상 시체를 묻을 자리가 없어서, 사람들이 도벳에까지 시체를 묻을 것이다. 내가 이 곳과 여기에 사는 주민을 이처럼 만들어 놓겠다. 반드시 이 도성을 도벳처럼 만들어 놓겠다. 나 주의 말이다. 예루살렘의 집들과 유다 왕궁들이 모두 도벳의 터처럼 불결하게 될 것이다. 이는 집집마다 사람들이 지붕 위에서 온갖 천체에게 향을 피워 올리고, 이방 신들에게 술을 부어 제물로 바쳤기 때문이다.”(렘19:12-13).
◎ 예레미야 20장은 제사장이면서 성전 총감독으로 있던 바스훌에 의하여 핍박을 받는 내용입니다.
예레미야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지만, 그를 반대하는 자들은 오히려 그를 죽이려 하고 결국은 가두었다가 풀어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과 바스훌과 그 가문 역시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면서도 예레미야는 너무나 힘들고 지쳐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처지를 탄원하면서 자신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조롱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속이신 것처럼 느끼기도 하여 한탄합니다.
예레미야는 너무나 고통 속에서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쳐보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 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 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예레미야20:9).
핍박 속에서 많은 갈등과 고민이 있었지만, 예레미야는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을 조롱하는 모든 자들을 심판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은 내 옆에 계시는 힘센 용사이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힘도 쓰지 못하고 쓰러질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이 실패해서, 그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큰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렘20:11).
그렇지만, 연약한 인간일 수밖에 없는 예레미야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하나님께 호소하며 탁식합니다.
“어찌하여 이 몸이 모태에서 나와서, 이처럼 고난과 고통을 겪고, 나의 생애를 마치는 날까지 이러한 수모를 받는가!”(렘20:18)
◎ 예레미야 21장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의 공격을 받은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 제사장을 예레미야에게 보내서 기도를 요청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준엄한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내용입니다.
그 선포의 말씀은 바벨론에 의한 남유다 왕국의 멸망과 포로로 잡혀갈 것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렘21:4-7).
그런데 그 말씀은 결국 유다의 모든 죄악에 대한 심판이었으며,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멸망을 말씀하시면서 지도자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다윗의 왕가는 들어라. 나 주가 말한다. 아침마다 공의로운 판결을 내려라. 너희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여 주어라. 억압하는 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 주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악행 때문에 나의 분노가 불처럼 일어나서 불탈 것이니, 아무도 끌 수 없을 것이다.”(렘21:12).
“나는 너희의 행실에 따라 너희를 벌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바로 예루살렘의 숲에 불을 질러, 그 주변까지 다 태워 버리겠다.”(렘21:14).
◎ 예레미야 22장은 유다를 다스리던 왕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조의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말씀하시면서 지금 임하는 심판은 결국 하나님께 대한 불손종과 부정의한 정치와 신앙의 타락과 우상숭배의 결과임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요구하십니다.
“나 주가 말한다. 너희는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고, 억압하는 자들의 손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여 주고,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지 말아라. 너희가 이 명령을 철저히 실천하면, 다윗의 보좌에 앉는 왕들이 병거와 군마를 타고, 신하와 백성을 거느리고, 이 왕궁의 대문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맹세하지만, 너희가 이 명에 순종하지 않으면, 바로 이 왕궁은 폐허가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렘22:3-5)
<생각해보기>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예레미야도 수많은 고난과 핍박과 조롱과 비난, 그리고 목숨의 위협을 받을 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결코 하나님을 떠나려는 불신앙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에 겪는 고난과 그리고 세상에서 믿음 바대로 사명을 수행하려고 할 때에 겪는 고민과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레미야와 같은 경우를 만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고민하고 갈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민과 갈등이 더욱 성숙한 신앙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아무런 생각 없는 맹목적인 확신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마음과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고민과 갈등을 억누르고 마치 그런 것이 전혀 없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는 신앙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믿음이 굳센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신앙을 잃을까 두려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경우일 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단과 사이비 종교에 잘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드는 의심이 혹시 불신앙은 아닐까 두려워 더욱 거짓을 진리로 확신하며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 예레미야는 성령이 충만한 예언자였습니다.
고난과 조롱과 핍박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마음에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였지만, 그럴수록 그의 마음속에서는 주님을 향한 열정이 더욱 불타올랐습니다.
그렇게 성령의 충만함으로 주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을 향한 주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주님은 지금 온 지구촌 전체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계시는 것 아닐까요?
오늘도 겸허한 마음으로 주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입니다.
사람의 신음소리만이 아니라 자연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제 마음과 영혼에 울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 08. 12. 수요일 아침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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