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과 희생의 용기가 없는 세대
얼마전 산악인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뉴스를 들었다. 종종 이런 소식을 들으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혹시 무모한 것은 아닌가? 그냥 편히 살지 왜 사서 고생을 하나?
그러나 모험과 도전이 없는 삶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공격성이 숨어 있다. 이 공격성 자체가 생존 에너지이다. 그런데 이 공격성이 성장과정에서 잘못된 자극을 받으면 악성으로 변질한다. 그러면 삶의 에너지가 되기 보다는 파괴적이 된다. 스포츠나 혹은 탐험과 모험은 이러한 공격성을 건강하게 발현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신명기 1장에 보면 호렙산에서 시작하여 가데스 바네아까지 이르른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는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가서 정복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거기서 주저하며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내었다. 정탐꾼을 보낸 동기는 불신앙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세의 다짐하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마음에 의심이 들었다. 정말로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을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걱정이 앞선 그들은 모세에게 와서 정탐꾼을 보내자고 요청하였던 것이다. 모세는 그것을 거절하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락하였다.
이미 마음에 의심을 가지고 정탐을 하였기 때문에 결과가 부정적이 되리라는 것은 당연했다. 적반하장격으로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미워하여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려고 애굽 땅에서 끌어내었다고 원망하였다. 이것은 불신앙의 극치였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고, 광야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그것에 대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하고 희생이 따라야 한다. 과거를 버리고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약속도 의심했다. 눈 앞의 작은 고난을 피하려다 더 큰 고난을 격어야 했다. 결단하지 못하고 약속에 대한 믿음도 없는 자는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없다.
비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그 비전을 이루려면 모험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